정치 · 2026. 8. 18.
이재명이 꺼낸 개헌, 이미 푸틴의 길을 걷고 있다
사회보장 강화와 애국으로 포장한 푸틴 개헌안
이재명도 푸틴식 패키징 개헌 시도할 듯
입구를 틀어막는 것이 가장 중요
이재명이 꺼낸 개헌, 이미 푸틴의 길을 걷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개헌을 꺼냈다. 청와대가 먼저 “4년 중임 대통령제가 국민 수용성이 높다”고 운을 띄우고, 이재명이 직접 X에 나서 불을 붙였다. 그러자 야당 일각 및 보수언론에서 “연임·중임만 안 한다고 약속하면 논의할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미 함정에 한 발 들어간 것이다. 이 장면을 보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다.

푸틴이 보여준 ‘패키징’의 교과서
푸틴은 2020년 헌법을 고쳤다. 겉으로 내세운 것은 사회보장과 애국이었다. 그 내용도 실로 파격적이었다.
- 연금 정기 인상
- 최저임금을 생계비 이상으로 보장
- 가족 가치 수호
- 조상의 기억 보호
- 러시아어를 국가 형성 민족의 언어로 명시
- 영토 양도 금지
전국에 걸린 빌보드에는 군복 입은 소녀가 카네이션을 들고 “조상의 기억을 지키자”고 외쳤고, 웃는 가족이 “가족 가치를 지키자”고 호소했다. 푸시킨 초상화가 등장해 “모국어와 문화를 지키자”고 했다. 하지만 가장 핵심은 제로잉 즉 푸틴의 임기를 초기화해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게 만드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었다. 법률 조문 속에만 조그맣게 존재했다.

헌법변경에 찬성하십니까
투표 용지에도 “연임에 찬성하십니까?”가 아니었다. “헌법 변경에 찬성하십니까?”였다. 사회보장과 애국 조항이 패키지로 묶여 있으니 공산당을 비롯한 야당도 반대하기 어려웠다. 그들은 “좋은 조항이 있는데 어떻게 반대하냐”며 사실상 동조했다.
2008년 메데베데프와 총리와 대통령 자리를 맞바꾸는 캐슬링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3연임할 생각이 없다. 권력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메드베데프에게 대통령직을 넘겼다. 실제로는 총리로 실권을 쥐고 4년 뒤 다시 돌아왔다. 권력을 내려놓는 척하면서 구조를 바꾼 것이다.
이재명이 따라가는 길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도 같은 패턴이다.
“87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말은 푸틴의 “93 체제를 바꿔야 한다”와 정확히 같은 레토릭이다. 여기서 말하는 1993년 체제란, 보리스 옐친 대통령 시절인 1993년 12월 국민투표로 채택된 러시아 헌법을 가리킨다. 당시 옐친은 의회와 극한 대립 끝에 강한 대통령제를 골자로 한 새 헌법을 밀어붙였다. 이 헌법은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요소를 상당 부분 수용하면서도,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것이 특징이었다. 푸틴은 2020년 개헌을 하면서 이 1993년 체제를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틀”로 규정하고, 그것을 극복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재명이 꺼낼 패키지는 이미 윤곽이 보인다. 종합선물셋트같은 개헌안을 들고 올 것이다.
- 5·18 정신의 헌법 명시
- 친일재산 환수
- 호남 반도체 등 지역 균형발전
- - 연금인상
- 선관위 개편
- 제왕적 대통령제 수정 및 보완
여론을 통한 사전정지 작업에 들어갈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끝내자”는 프레이밍을 이용한다. 여론조사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에 찬성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반대한다. 그 결과를 “국민이 개헌을 원한다”는 근거로 삼을 것이다. 연임·중임 조항은 패키지 맨 밑에, 작은 글씨로 들어가거나, 아예 나중에 ‘부수적 조항’으로 처리될 가능성도 있다.
“연임·중임 안 한다”고 선언해도 소용없다. 말은 언제든 바뀐다. 푸틴도 “권력에 욕심이 없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구조다. 구조를 바꿔 놓으면 나중에 총리직으로 캐슬링하거나, 중임 제한을 다시 손보거나, 아예 임기 계산을 초기화하는 식의 응용이 가능해진다.

왜 패키징이 위험한가
패키징 개헌의 진짜 위력은 ‘반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에 있다.
사회보장과 애국, 지역 개발, 역사 청산처럼 거부하기 힘든 조항을 앞세우면, 반대하는 사람은 “그럼 연금 인상 반대하느냐”, “친일재산 지키자는거냐”, “호남 발전 반대하느냐”는 역공을 받는다. 보수세력을 잡기 위해 핵무장 같은 것을 이슈로 꺼낼 수도 있다. 야당이든 보수든 같은 딜레마에 빠진다. 푸틴 때 러시아 야당이 그랬고, 지금 한국에서도 같은 함정이 기다리고 있다.
더 위험한 것은 국회 내부의 유인이다. 분권형이나 내각제 요소가 들어가면 국회의원들에게 예산권 강화, 권한이 막강해진 총리, 세습 권력의 가능성이 열린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나도 한자리’ 욕심이 생긴다. 그 순간 개헌은 국민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된다.
결론은 입구에서 막아야 한다
푸틴의 개헌이 가르쳐 준 교훈은 분명하다. 권력 연장은 정면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인기 있는 조항으로 포장하고, 감정을 자극하고, 반대할 명분을 없앤 뒤, 구조를 바꾼다. 그리고 그 구조 위에서 장기 집권을 완성한다. 지금 “연임·중임 안 한다고 하면 논의하자”는 말은 이미 성문을 연 것과 같다. 먼저 협상을 권하는 자가 배신자라는 영화 ‘대부’의 대사가 떠오르는 이유다. 87 체제 타령을 하며 개헌을 꺼내는 순간, 그것은 이미 패키징의 시작이다.
입구에서 차단하지 않으면, 나중에 패키지 전체를 거부하기는 거의 불가능해진다.
푸틴이 보여준 길을 이재명이 그대로 걷고 있다면, 우리가 할 일은 단 하나 뿐이다. 입구를 막는 것이다.
김남훈 기자
heavy1@of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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