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2026. 8. 24.
수사·기소 분리 명분에 연 2천억 임대료, 그 가격이 정당한가
10월 출범 중대범죄수사청 연간 임대료 2000억원
보안시설 및 리모델링 고려하면 더 증가할 것
임대업자는 마귀라더니 배불려주는 정부
아무리 명분이 중요하다고 해도, 1년에 2천억 원을 임대료로 쓸 수는 없다.
오는 10월 출범하는 중대범죄수사청이 본청과 서울청만으로 연간 409억 원을 민간 건물에 임대료로 지출한다. 월 34억 원이 넘는 돈이다. 지방청까지 합치면 전국 추정 연간 2천억 원에 육박한다. 기존 검찰청사가 국가 소유로 남아 있는데도,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한다”는 정치적 명분을 앞세워 민간 오피스를 통째로 빌리기로 한 결과다. 5년 장기 계약까지 맺어 놓았으니, 정권이 바뀌어 제도가 조정되더라도 남은 기간 비용은 그대로 세금으로 메워야 할 가능성이 크다. 보안 시설과 리모델링 비용까지 더하면 실제 부담은 더 커진다.

이 금액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재명 대통령이 야당 시절 어떤 예산을 어떻게 대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당시 민주당은 검찰 특수활동비와 청와대(대통령실) 특수활동비를 가차 없이 깎았다. 검찰 특활비는 80억 원대, 대통령실 특활비는 82억 원대였다. “쌈짓돈”, “어디다 썼는지도 모르는 돈”, “권력자의 개인 용돈”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사용 내역이 불투명하고 증빙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전액 삭감을 밀어붙였다. 검찰 특활비를 0원으로 만든 것도, 대통령실 특활비를 전액 삭감한 것도 그 시기의 일이다. 야당 대표였던 이재명은 “이것 때문에 살림을 못 하겠다고 하는 것은 사실 조금 당황스러운 얘기”라고까지 말했다. 수십억 원 단위의 예산을 ‘불필요한 지출’로 낙인찍고, 삭감 자체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그런데 정권을 잡은 뒤에는 달랐다. 삭감했던 특활비는 추경을 통해 일부 복원됐고, 이후 예산안에서도 다시 편성됐다. 야당 시절에는 “투명성”과 “재정 건전성”을 앞세워 수십억을 깎았으면서, 여당이 되자 그 원칙은 유연하게 바뀌었다. 특활비 논란의 본질은 ‘금액의 크기’가 아니라 ‘원칙의 일관성’이었다. 그런데 그 원칙이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중수청 임차료는 그 특활비 규모를 압도한다. 야당 시절 깎았던 검찰 특활비 80억 원과 대통령실 특활비 82억 원을 합쳐도 162억 원 수준이다. 중수청 본청·서울청 임차료만 이미 그 두 배를 넘고, 전국 추정치 2천억 원은 특활비 전체를 열 번 이상 합친 금액이다. 특활비는 그나마 매년 국회 심의를 통해 조정할 수 있는 유동적 예산이었다. 중수청 임차료는 5년 계약으로 고정된 지출이다. 한 번 맺으면 쉽게 되돌리기 어렵다. 야당 시절에는 수십억 원의 ‘불투명한 쌈짓돈’을 문제 삼았으면서, 집권 후에는 수천억 원의 ‘정치적 상징 비용’을 장기 계약으로 묶어 버린 것이다.
더 큰 모순은 부동산에 대한 태도다. 이 정부는 부동산 사업자를 향해 “투기꾼”, “불로소득”, “마귀”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내며 강한 규제와 징벌을 정당화해 왔다. 그 정부가 정작 국가 예산을 가지고 민간 부동산 사업자에게 해마다 수천억 원을 임대료로 건네는 선택을 한 것이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민간 건물주의 수익을 보장해 주는 구조를 스스로 만든 셈이다. 부동산 시장을 억누르면서, 정작 국가 기관은 그 시장에 대규모 임차 수요자로 뛰어드는 장면은 상징과 현실의 괴리를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수사·기소 분리라는 원칙 자체가 무가치하다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원칙을 구현하는 방식이 이렇게 값비싸고, 비효율적이며, 모순적이라는 점이다. 기존 국가 소유 청사를 활용하면서 동선과 출입구를 분리하는 정도의 현실적 대안은 검토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완전히 다른 건물이어야 한다”는 상징적 요구가 우선시됐다. 그 상징의 가격표가 연 2천억 원이다. 야당 시절에는 수십억 원의 특활비를 두고도 “재정 낭비를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면서, 집권 후에는 그 수십 배에 달하는 고정 지출을 정치적 명분으로 포장하고 있다.
정치적 명분은 때로 비용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그 비용이 이 정도 규모에 이르면, 명분 자체에 대한 질문이 먼저 제기돼야 한다. 특활비를 쌈짓돈이라고 깎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국민 세금을 민간 건물주에게 장기 임대료로 바치는 선택을 했다. 부동산 사업자를 악마화하던 정부가, 정작 세금으로 민간 임대 시장을 키우는 장면은 원칙의 부재를 드러낸다. 국민은 그 괴리의 대가를 앞으로도 계속 치러야 한다.
김남훈 기자
heavy1@of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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