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2026. 8. 26.
[김변 #1377] 타임머신의 역설
대한민국헌법상 헌법 개정에 관한 규정은 제10장(헌법개정)에 딱 3개가 있다. 제128조 제129조 제130조가 그것이다. 전문(前文)을 시작으로 기본권, 국가설계도(통치구조)를 거쳐 도도히 흐르는 헌법정신은 위 개정절차에서 정점을 찍고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전문부터 제130조까지 헌법 규정 하나하나가 국가의 정체성 및 역사, 미래를 담고 있다. 국가의 모든 규범은 이 헌법의 체계 안에서 유효하고, 헌법이 제공하는 강력한 동력 덕분에 사람의 한계를 극복한 법치국가, 제도와 시스템을 통한 국가운영이 가능할 수 있다.

헌법에 의한 통치, 즉 입헌국가는 근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하고 있다. 개개의 사람을 들여다보면 그 특질이 다양하고 기질과 욕망이 천차만별이다. 우리 헌법은 이 다양성을 ‘자율과 조화’라는 가치로 승화시킬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헌법 전문). 여기서 ‘자율’은 ‘민주’로, ‘조화’는 ‘공화’로 제도화 되어 헌법 제1조 제1항(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 새겨져 있다. 전문은 헌법정신을 비추는 창문이다. 그 정신은 개별 규정으로 구체화 된다. 이것이 우리 헌법의 생김새다.
‘조화(공화)’란 무엇인가? 어느 개인의 기질에 국가운영이 좌우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국민 개개인의 능력을 ‘조화’롭게 국가운영에 반영하여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추구하는 것이 국가 목표인 것이다. 이런 조화를 위해 국민 개개인에게 책임과 의무를 요구하는 것도 국가의 의무이다(헌법 전문). 인간이 아닌 법의 지배, 이를 위한 권력분립은 우리 헌법을 지탱하는 반석이다.
결국 우리 헌법은 불완전한 인간이 개별헌법 규정의 효력을 부인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는 명백한 반헌법적 태도이며 민주공화국을 선언한 우리 헌법이 경계하는 인간상이다. 인간은 호시탐탐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본능이 있다. 특히 권력에 대한 인간의 말초적 탐욕은 인류 역사와 분리해 낼 수 없을 정도다. 국가가 문명화 된다는 것은 이러한 개인의 욕망을 억제하고 다스리는 법과 제도가 발달 했다는 것이다. 동물과 다른 인간만의 사회적 진화의 산물이다. 개인의 편차를 전체적 조화 속에 녹여 온 지혜, 그것이 쌓여 공동체의 자산이 된 것이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헌법이다.
그래서 헌법의 방향성은 명백하다. 헌법에는 권력을 나누고 서로 견제를 하며 균형(조화)을 갖도록 하는 여러 규정이 있다. 단순히 국민의 권리(기본권)를 선언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를 위한 장치(통치구조)를 같이 둔 것이다. 그것도 부족할까봐 헌법의 해석이 자의적으로 되지 않도록 나침반도 두고 있다.
헌법 전문 첫 문장에는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문구가 있다.
4·19를 촉발시킨 ‘불의’란 무엇인가? 자유당 정권의 장기집권 과정에서 발생한 독재와 부패를 말한다. 독재는 부패를 동반한다. 장기집권을 위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사사오입 개헌 등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우리 헌법 전문에 새겨진 것이다. 우리 헌법은 ‘독재’를 거부한다. 형태를 불문하고 독재시도를 배격한다는 뜻이 헌법의 첫 문장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이후 이어지는 “민주이념”, “민주개혁”도 같은 맥락이다. 통치구조 규정에서는 일관적으로 권력을 쪼개 분산시키고 있다. 이렇게 우리 헌법의 독재에 대한 반감은 기본권과 통치구조의 규정을 관통하여 헌법개정(제128조 ~ 제130조)에 취합된다.
헌법 제128조 제2항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
독재의 욕망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을 실현할 힘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있다면 대통령이 유일하다. 우리 헌법은 이 진실을 우회하지 않는다. 모호하거나 추상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대놓고 말한다. 현직 대통령은 지금 임기가 끝이라고! 연장하거나 두 번 할 생각 하지 말라고!
이 규정은 현행헌법(1987년 제9차 개헌)에 처음 들어온 것이 아니다. 1980년 제8차 개헌 당시 제129조 제2항에서 처음 도입된 후 그대로 9차 헌법(현행 직선제헌법)에 승계된 것이다. 이 규정이 도입된 1980년 신군부는 12.12군사반란과 518민주화운동을 진압하며 출범 했다. 이러한 출생의 한계를 보완해 민심을 수습할 필요가 절실 했다. 당시 민심은 무엇이었는가? 1954년 이승만 정권의 사사오입 개헌, 1969년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 등 독재에 대한 환멸이 민심이었다. 장기집권을 위한 헌법개정의 폐해를 국민들은 실감 했다. 이 부끄러운 역사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염원이 간절했다. 신군부는 이러한 국민의 염원 및 역사적 교훈을 담아 단임제를 준수하고 다시는 장기 집권을 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헌법에 명시하였다. 이렇게 만든 제129조 제2항을 9차 직선제 개헌에서도 그대로 이어 받아 제128조 제2항에 명시한 것이다. 당시 개정권자의 동기야 어떻든 이 헌법규정 및 그 정신을 달리 해석할 여지는 없다. 신군부가 역사에 지은 죄를 두둔할 생각이 없다. 같은 논리로 ‘민주’라는 이름을 달고 신군부도 하지 않던 짓을 꿈꾸는 자들은 신군부를 욕할 자격이 없다.
거창한 헌법정신까지 동원하지 않더라도 같은 결론을 도달하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새로운 헌법은 지금 헌법상 절차에 따른다. 새로운 헌법이 유효하려면 지금 헌법의 개정절차(제10장)에 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 헌법에 따르면 헌법개정은 국회의원 재적의 2/3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제130조 제1항). 이것을 국회의원 1/3 이상 찬성으로 개정한다고 하자. 이러한 개정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지금 절차에 따라 2/3 찬성을 얻어야 한다. 어차피 개정할 것이니까 개정 후의 절차로 지금 헌법을 개정하자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개정된 헌법의 유효성은 현행 헌법이 제공한다. 지금 헌법상 개정절차를 지키지 않은 개정 헌법은 효력이 없다. 개정헌법의 정당성은 ‘현행 헌법의 유효성’을 전제로 한다는 상식적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간단한 논리구조로도 제128조 제2항을 삭제하면 현직 대통령의 임기 연장이나 재출마가 가능하다는 발상(발칙하다)이 모순임을 알 수 있다. 앞서 정리한 바와 같이 개정 헌법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현행 헌법의 유효성이 전제 되어야 하는데, 앞선 발칙한 발상은 현행 헌법상 개정규정 3개 중 유독 제128조 제2항은 그 효력이 없다는, 즉 헌법규정의 선택적 무효를 주장하는 것과 같다. 기괴한 주장임은 긴 설명이 필요 없다. 현직 대통령이 개헌을 한다면 그 순간 제128조 제2항이 적용되어 다시는 대통령을 할 수 없다는 헌법적 효력이 확정된다. 역사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다. 이것을 흔드는 자는 독재의 탐욕에 멀어 공화국의 가치를 팔아먹는 사기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시간을 과거로 거슬러 가는 타임머신이 가능한가? 지금은 안 되지만 미래에는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는 모순이 있다. 미래에 그런 기술이 있다면 현재에도, 과거에도 그런 기술이 있어야 한다. 미래에 개발한 기술을 가지고 과거로 가면 되기 때문이다. 지금 그런 기술이 없다는 것은 미래에도 없다는 근거가 된다.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을 논하는 순간 시간의 벽은 의미가 없어지고 그 논제의 의미도 같이 상실되는 것이다.
이미 확정된 헌법의 효력을 미래의 헌법으로 부인할 수 있다면, 지금 헌법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금 헌법이 효력이 없다면 이를 근거로 탄생한 개정헌법도 효력이 없다. 그러면 그 헌법으로 지금 헌법의 효력을 부인한다는 논리도 성립하지 않는다. 이 미래로 가서 개정할 필요 없다. 지금 없는 것으로 치면 된다. 이는 현행헌법의 권위를 부정하는 반헌법적 발상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자가 있다면 사회공동체, 우리 민주공화국을 위해 이 사회에서 퇴출하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금 헌법이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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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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