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 1시간 전
"능력 없으면 비워두겠다"더니… 줄줄이 내려앉은 '성남 낙하산'
"능력 없으면 비워두겠다"더니… 줄줄이 내려앉은 '성남 낙하산'
연봉 2억원 안팎의 공공기관 수장 자리에 이재명 대통령과 오래 인연을 맺어온 인사들이 잇따라 임명되면서 '보은·낙하산 인사'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성남'이다. 이 대통령이 성남에서 시민운동을 하던 1990~2000년대부터 함께한 사람들이고, 당시 사무국장으로 손발을 맞췄던 김현지 청와대 제1부속실장과도 가깝다. 국민의힘은 이를 경기·성남 라인을 챙기는 보은·낙하산 인사로 규정하고 공세를 펴고 있다.

꼴찌 점수로도, 1등을 제치고도
한국지역난방공사가 먼저 도마에 올랐다. 연봉이 2억4300만원에 이르는 사장 자리에 오른 하동근(73) 사장은 서류와 면접에서 최하위권 점수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하 사장은 이 대통령과 시민단체 활동을 함께했고, 김 실장의 결혼식 주례를 맡은 인연도 있다.
비슷한 시기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연봉 약 1억8200만원)에 임명된 남광우 원장도 서류와 면접 모두 1위였던 지원자를 밀어내고 낙점됐다. 남 원장은 1990년대 이 대통령과 김 실장이 몸담았던 성남시민모임의 초대 사무국장 출신이다.
자소서 없이, 마감 지난 서류로
건설근로자공제회 장건(74) 이사장은 서류 문제로 의혹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실이 선임 관련 자료 일체를 요구했는데, 공제회가 보낸 자료에서 필수 서류인 자기소개서만 빠져 있었다. 의원실은 자소서 없이 선임이 이뤄졌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일부 경력 확인서는 접수 마감보다 이틀 늦게 발급된 것으로 확인돼, 서류 단계부터 봐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공제회는 일용직·임시직 건설노동자가 노후를 위해 모은 돈을 운용하고 퇴직할 때 공제금을 지급하는 노동부 산하 기관이다. 이사장 연봉은 지난해 성과급을 포함해 2억1000만원이었다. 장 이사장은 2004년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대표를 지냈다. 당시 집행위원장이 이 대통령이었고, 김 실장은 이때부터 3년간 사무국장을 맡았다. 이 대통령이 경기지사로 있던 2020년에는 도 산하 한국도자재단의 비상임 이사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원자력 경험 없는 변호사, 닷새 만에 '승인'
한국원자력안전재단 김성진 이사장은 감독기관의 검증이 형식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는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국민의힘 서천호 의원실에 낸 자료를 보면, 재단이 5월 15일 이사장 선임 승인을 요청하자 원안위는 별도의 자격 심사나 회의 없이 5월 20일 승인했다. 재단 임원추천위원회가 밝힌 추천 이유도 적극성과 리더십, 협업 능력이 뛰어나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변호사인 김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비서관을 지냈지만 원자력·안전 분야 경력은 사실상 없다는 평가다. 대신 이 대통령이 "내 분신"이라고까지 불렀던 김용 민주연구원 수석부원장 등 성남·경기 라인과 가깝고, 지난 6월 선거 때는 김 부원장의 출마 준비를 돕기도 했다. 이사장 보수는 연봉과 성과급을 합쳐 약 2억3500만원이다.
원안위는 자격 검증이 재단 임추위의 서류·면접 심사와 3배수 추천 과정에서 이미 이뤄졌고, 재단의 승인 요청 뒤 원안위가 따로 심사하도록 한 규정은 없다는 입장이다.
"덧붙일 게 없다", "무리하지 않겠다"는 계획서
지난 4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에 오른 황교익 원장은 지원 서류부터 부실했다. 국민의힘 김석기 의원실이 받은 자료에 따르면, 황 원장이 2월에 낸 자기소개서와 직무수행계획서는 각각 A4 용지 한 장 반 분량이었다. 계획서에는 기존 사업계획이 훌륭해 덧붙일 것이 없으니 취임하면 이를 실현하는 데 힘쓰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임기 3년 동안 할 일이 많지 않으니 무리하지 않겠다는 문장도 있었다. 그런데도 심사를 통과했다. 음식 칼럼니스트 출신인 황 원장은 이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에 몰릴 때마다 공개적으로 지원해 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내로남불] "보은 인사 할 일 없다"던 그 입
가장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은 이 대통령 자신의 말이다. 2025년 5월 25일 대선 후보 시절 기자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은 자신은 누구에게도 빚진 게 없어 보은 인사를 할 이유가 없으며, 이재명 정부의 인사 기준은 오직 능력뿐이라고 약속했다. 1년여 뒤 현실은 시민운동 동지, 부속실장의 결혼식 주례, 위기 때마다 곁을 지킨 칼럼니스트의 기관장 임명이다.
황교익 원장은 처음 나온 이름도 아니다. 2021년 8월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가 황씨를 경기관광공사 사장에 내정하자 보은 인사 논란이 일었고, 일주일 만에 황씨가 후보직을 내려놓았다. 당시 이 지사는 보은 인사라는 지적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비판은 같은 당 안에서 먼저 나왔다. 경선 경쟁자였던 이낙연 캠프의 오영훈 수석대변인은 “'내 사람 심기'가 도민에 대한 책임이냐”고 따지며 이를 도정 사유화로 규정하고 내정 철회를 요구했다. 그렇게 물러났던 인물이 5년 뒤 국가 문화관광 정책연구기관의 수장이 됐다.
경기지사 시절의 인사 방식도 다시 소환된다. 이 대통령의 민선 7기 경기도에서는 도 산하 13개 공공기관 노조 총연맹이 보은 인사로 의심되는 93명의 실명과 경력을 담은 '낙하산 리스트'를 공개한 일도 있었다.
윤석열 정부의 인사를 공격할 때 민주당의 언어는 지금과 전혀 달랐다. 당시 '내란 은폐 및 알박기 인사 저지 특별위원회' 위원장이던 정일영 의원은 2025년 5월 성명에서 윤석열 정권이 훈장을 주듯 자기 사람들에게 한 자리씩 챙겨주려 한다고 비난했다. 김병기 당시 원내대표는 같은 해 8월 정책조정회의에서 공공기관의 무능과 부패를 더는 봐줄 수 없다며 "문제의 핵심은 윤석열 정부의 낙하산 알박기"라고 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 철학이 맞지 않는 기관장들은 스스로 거취를 판단하라고 압박했는데, 정작 본인은 국민권익위원장 임기 3년을 채우느라 윤석열 정부와 1년 넘게 '동거'한 당사자여서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남의 낙하산에는 '훈장 나눠주기', 내 낙하산에는 '능력 인사'라면 기준은 처음부터 없었던 셈이다. 우군의 시선도 곱지 않다. 진보 성향 시민단체인 문화연대가 청와대 앞에서 문화예술계 보은 인사를 규탄하는 성명을 냈고, 65개 단체와 794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 성명에서 문제 삼은 인물 가운데 한 명이 바로 황교익 원장이다.
"비워두는 게 낫다"던 원칙은 어디로
공기업과 공공기관 인사가 '낙하산'과 '보은' 논란으로 시끄럽지 않은 정부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권 안에서도 당혹감이 감지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공기업 인사를 늦춰온 것은 능력 없는 사람을 앉히느니 자리를 비워두는 편이 낫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전했다. 그런데 그 원칙과 정반대인 인사들이 줄줄이 낙점되니 난감하다는 것이다.
비워둘 만큼 신중했다던 자리에, 서류도 제대로 내지 않은 측근이 앉았다.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았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갚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김남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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