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1시간 전

AI에게 물어봤다 '이재명 재판 받아야하냐'

국정 최고 자문기구가 되어버린 제미나이

월 2만 9천원에 밀려버린 청와대 참모진

제미나이에게 이재명 재판 물어봤더니

헌법 해석을 구글 챗봇에 맡긴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X에 올린 글의 제목은 '제미나이에게 물어봤습니다'였다. 공소청장과 중수청장의 국무회의 배석을 문제 삼는 야당과 법조계를 향해 "헌법과 정부조직법이 규정한 대통령의 행정감독권과 정부 통솔 구조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궤변"이라고 했다. 정부조직법 제2조, 제7조 4항, 제11조 1항, 제12조 4항, 국무회의 규정 제8조가 줄줄이 붙었고, "밀실 속 치외법권 성역"을 만들려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결론이 도출됐다. 구글의 생성형 AI가 쓴 것을 대통령이 옮겼다.


AI를 적극 활용하는 이재명 대통령 (AI 이미지)
AI를 적극 활용하는 이재명 대통령 (AI 이미지)


헌법적 근거가 3초만에 나왔다

2024년 12월 27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당시 이재명 대표는 한덕수 권한대행 탄핵 정족수를 두고 휴대전화를 들어 보이며 "챗GPT에 물어봤다"고 했다. 151명이면 된다는 답이었고, "헌법적 근거가 3초 만에 나왔다"고 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부디 챗GPT를 쓰시고 상식을 갖추길 바란다"고도 했다. 

어떤 AI를 쓰는지 공개한 것 자체가 문제다

대통령이 제미나이를 쓴다는 사실은 이제 전 세계가 안다. 국가원수가 어떤 서비스에 어떤 질문을 넣는지는 그 자체가 정보다. 대통령이 제미나이에 입력한 질문 목록이 있다면 그것은 청와대가 지금 무엇을 고민하는지 보여주는 문서가 된다. 개인용 제미나이 기준으로 그 데이터는 구글 서버에 있다. 국내에 없고 대한민국 정부가 통제하지도 못한다. 해킹이든 내부자 유출이든, 뚫리면 대통령의 사고 과정이 통째로 나간다.

AI는 오염시킬 수 있다

더 심각한 건 답변 조작 가능성이다. 2025년 10월 앤트로픽과 영국 AI안보연구소 공동 연구에서, 학습 데이터에 악성 문서 250개만 섞어도 모델에 백도어를 심을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모델 크기와 무관했다. 같은 해 3월 뉴스가드 조사에서는 러시아 '프라우다' 네트워크가 뿌린 거짓 주장을 챗GPT·제미나이 등 주요 챗봇 10개가 33%의 확률로 그대로 반복했다. 뉴스가드는 이를 ‘LLM 그루밍'이라고 불렀다. 특정 챗봇을 길들여 특정 답을 내놓게 하는 작업이다. 대통령이 어떤 챗봇을 쓰는지 공개됐으니, 어떤 챗봇을 길들여야 하는지도 공개된 셈이다.

스웨덴 총리는 "참고용"이라 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2025년 8월 스웨덴 울프 크리스테르손 총리가 "세컨드 오피니언을 얻으려고 챗GPT를 꽤 자주 쓴다"고 했다. 그 나라 언론과 학계는 즉각 반발했다. 아프톤블라데트는 사설에서 총리가 외국 빅테크의 AI 광풍에 휩쓸렸다고 썼고, 우메오대 교수는 "우리는 챗GPT에 투표하지 않았다"고 했다. 총리실 대변인이 "민감 정보는 절대 넣지 않는다"고 해명해야 했다. 크리스테르손은 참고용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헌법 해석의 근거라고 했다.

미국은 어느 회사 AI를 쓸지 안보 사안으로 다룬다

미 국방부는 챗GPT를 쓰되 ‘genai.mil’이라는 별도 망에서 쓴다. 기밀망에 AI를 들이는 문제는 업체와 정부가 몇 달째 조건을 놓고 협상 중이다. 올해 2월 트럼프 대통령은 앤트로픽 제품의 연방정부 사용을 전면 중단시켰다. 옳고 그름을 떠나, 미국은 정부가 어느 회사 AI를 어떤 조건으로 쓰는지를 대통령이 직접 결정하는 안보 사안으로 본다. 우리 대통령은 그 결정 없이 소비자용 챗봇을 열고 헌법을 물었다.

삼성은 3년 걸려서 열었다

삼성전자는 2023년 4월 반도체 부문 직원이 내부 소스코드를 챗GPT에 올렸다가 유출된 뒤 한 달 만에 사내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다시 연 것은 올해 6월 12일이다. 직원 2,500명으로 두 달간 검증했고, 보안 교육을 이수한 직원에게만 권한을 줬고, 민감한 사내 데이터는 자체 모델 '가우스'가 맡는 투트랙으로 짰다. 소스코드 한 건 새는 것을 막기 위해 3년치 울타리를 쳤다. 

국정원 지침이 있는데 대통령이 안 지킨다

국정원은 2023년 6월 '생성형 AI 활용 보안 가이드라인'을 전 공공기관에 배포했다. 비공개 정보 입력 금지, 정부 AI는 행정망 안에 자체 구축하라는 내용이다. 2025년 2월에는 국가인공지능안보센터를 신설했고, 올해 배포한 AI 보안 가이드북에는 '학습데이터 오염'이 15개 위협 중 하나로 들어가 있다. 공무원에게는 조심하라고 지침을 내려놓고, 그 지침의 최종 책임자가 X에 "제미나이에게 물어봤습니다"라고 쓴다.

월 2만 9천 원짜리에 밀린 청와대 참모진

청와대에는 민정수석이 있고 법무비서관이 있고 그 아래 변호사 출신 행정관들이 있다. 정부에는 법제처가 있다. 헌법과 정부조직법 해석은 이 사람들이 월급 받고 하는 일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글에는 이들 중 누구의 이름도 없다. 있는 이름은 '제미나이'다. 구글이 파는 소비자용 구독 서비스이고, 개인 요금제는 월 2만 9천 원이다.

세 가지 중 하나다. 참모들이 답을 안 냈거나, 낸 답이 대통령 마음에 안 들었거나, 애초에 묻지 않았거나. 첫째라면 참모진이 무능한 것이고, 둘째라면 대통령이 듣기 싫은 말을 안 듣는 것이고, 셋째라면 보좌 체계가 통째로 놀고 있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국민 세금으로 유지되는 대통령비서실이 2만 9천 원짜리 챗봇보다 쓸모없다는 걸 대통령 본인이 공개했다.

참모의 답은 틀리면 책임을 묻는다. 수석이 물러나고 비서관이 바뀐다. 제미나이의 답은 틀려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 대통령이 "제미나이가 그랬다"고 하면 끝이다. 한동훈 의원은 이날 "제미나이 할애비를 데려와도 수사지휘, 기소지휘 하면 안 된다"고 썼다. 책임은 사라지고 대통령의 권위만 남는 구조를 한 줄로 짚은 말이다.

제미나이에게 물어봤다, 대통령 재판은?

대통령이 공인한 방법 그대로 해봤다. 제미나이에게 헌법 제84조 불소추특권과 현직 대통령 재판 문제를 물으면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쪽에 힘을 실어 달라고 주문했다. 답은 이렇다. "헌법 제84조의 '소추'는 새로운 형사 사건으로 기소하는 행위만을 의미할 뿐, 이미 기소되어 진행 중이던 재판까지 멈추는 것은 법의 예외를 지나치게 넓히는 것이다." 이어서 "대통령 역시 일반 국민과 마찬가지로 재판을 통해 무죄나 유죄를 떳떳하게 판가름받아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 문장은 "따라서 재판받아야 합니다"였다.

따라서 재판받아야 합니다 (제미나이에게 '재판재개'로 바이어스 주고 받은 답변)
따라서 재판받아야 합니다 (제미나이에게 '재판재개'로 바이어스 주고 받은 답변)

주문대로 답이 나왔다. 그게 이 글의 요지다. 제미나이는 질문자가 원하는 쪽으로 답을 쓰는 물건이고, 대통령의 21일 글도 그렇게 나왔을 것이다. 중수청장 배석 문제에서 제미나이의 답이 '헌법상 당연한 일'의 근거가 된다면, 대통령 재판 문제에서 제미나이의 답도 같은 무게를 가져야 한다. 한쪽 답만 받고 다른 쪽 답은 버린다면 처음부터 근거가 아니라 장식이었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인정한 최고 국정자문기구가 재판을 받으라고 한다. 그러니 재판을 받으시라. 그게 싫다면 제미나이를 국정에서 내려놓으시라.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전에 답해야 할 게 있다. 헌법 해석을 챗봇에서 받아 오는 대통령은, 예산과 외교와 안보는 지금 누구에게 묻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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