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2시간 전

“내가 오세훈 어떻게 엮는지 보라” 명태균 주장이 무너진 이유

서울고법 형사7부, "명태균 진술을 믿기 어렵다"

‘울면서 전화’ 주장, 진술 시점, 동기, 새로 나온 녹취로 뒤집힌 1심

특검, 상고하겠다

서울고법 형사7부(구회근 부장판사)는 23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오 시장이 명태균 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후원자 김한정 씨에게 비용 대납을 요청했다는 공소사실의 직접 증거가 사실상 명 씨 진술뿐인데, 그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함께 기소된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김 씨도 무죄를 받았다.

"한 대목이 무너지면 나머지도 믿을 수 없다"

1심(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은 명 씨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카카오톡 대화, 언론 기사, 선거캠프와 만난 시기, 여론조사 결과 공유 내역에 맞는 부분은 믿었다. 1심은 이를 근거로 여론조사 10건 중 5건과 김 씨가 낸 2100만원을 유죄로 보고 오 시장에게 벌금 1000만원과 추징금 2100만원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이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진술이 유일한 증거일 때 그 진술의 중요한 부분을 믿기 어렵게 만드는 객관적 사정이 있으면 진술 전체의 신빙성이 약해진다고 봤다. 그래서 일부만 유죄 증거로 쓰려면 그 부분을 믿을 근거나 보강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심이 든 자료로는 그 보강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명 씨 진술의 문제로 네 가지를 들었다. 직접 겪은 사실과 추측·과장을 구분하기 어렵고, 자신에게 불리한 대목에서는 주변적인 설명만 하거나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며, 기존 진술도 유리한 쪽으로 다시 해석하는 경향이 있고, 객관적 사정이나 주변 관련자 진술과 어긋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이미지 재생성 _ 팩트파인더
이미지 재생성 _ 팩트파인더 

울면서 전화했다는 주장, 설문지 전송 시각과 김태열의 증언에 박살

명 씨는 2021년 1월 22일 창원 장복터널을 지나던 차 안에서 오 시장에게 네 차례 전화를 받았고, 오 시장이 울면서 나경원 후보를 이길 여론조사를 부탁했다고 주장해 왔다. 비용은 김 씨가 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통화 시점이 미래한국연구소의 여론조사 설문지 파일 전송 시각과 맞지 않는다고 봤다. 명 씨는 그동안 통화 시각을 오후 3시30분경 또는 4~5시 사이라고 진술해 왔다. 특검은 재판에서 오후 2시20~30분 무렵 강혜경 씨가 서울시장 여론조사 설문 준비 관련 메시지를 쓴 정황을 제시했다. 특검이 제시한 시각이 맞다면 설문 준비가 명 씨가 말한 통화보다 먼저 시작된 셈이다. 명 씨는 지난 8월 28일 항소심 반대신문에서 5년여 전 일이라 한두 시간 차이는 정확히 기억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답했다.

당시 차를 운전한 김태열 전 미래한국연구소 소장도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명 씨도 2021년 1월 22일에 한 첫 여론조사는 오 시장이 아니라 김종인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위해 진행했다고 진술한 적이 있다.

재판부는 또 오 시장이 불과 이틀 전에 처음 만난 명 씨에게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울면서 불법 비용 문제까지 언급하며 여론조사를 의뢰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1심은 명 씨가 말한 시간과 장소는 믿기 어렵다면서도 통화 내역 등을 근거로 오 시장이 그날 여론조사에 관해 전화로 물은 것은 사실로 봤는데, 2심은 이 부분까지 뒤집었다.

김 전 소장은 앞선 재판에서 명 씨에게서 오 시장이 도와달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한 적도 있다. 이는 오 시장이 아니라 명 씨에게서 들은 말이다. 명태균에게 유리한 증언을 했던 사람의 주장 조차 그러했던 것이다. 

오 시장이 고소하겠다 하자 명태균 진술 본격화 “내가 오세훈을 어떻게 엮는지 보라”

재판부는 명 씨가 김영선 전 의원 등에 대한 정치자금법 위반 수사에서는 오 시장 혐의를 진술하지 않다가, 오 시장이 고소 방침을 밝힌 2024년 12월께부터 본격적으로 진술했다고 지적했다. 수사가 거듭되며 증거가 늘수록 진술이 구체화됐다는 점도 신빙성을 의심하는 이유로 들었다.

재판부는 그 무렵 명 씨가 공개적으로 오 시장을 어떻게 엮는지 보라는 취지의 위협적인 말까지 한 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2021년 2월 이후 명 씨가 오 시장 측과 사이가 나빠졌고, 오 시장이 당선된 뒤 자신의 기여를 인정받지 못해 섭섭해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에 새로 나온 “오세훈이는 몰라요” 녹취

항소심에는 2021년 3월 명 씨와 김 씨가 통화한 녹취가 새로 제출됐다. 명 씨는 이 통화에서 “오세훈이는 몰라요”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 녹취가 오 시장이 울면서 여론조사를 부탁했다는 명 씨 주장과 맞지 않는다고 봤다. 

또한 김 씨가 명 씨의 연락처를 오 시장이 아니라 강 전 부시장을 통해 알게 된 것으로 보이며, 녹취에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있다고도 설명했다.

재판부는 명 씨의 여론조사 목적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미래한국연구소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뿐 아니라 부산시장 보궐선거 여론조사도 실시해 결과를 공표했고, 김종인 전 위원장과 지상욱 전 의원에게도 결과를 공유했다. 재판부는 명 씨가 오 시장의 의뢰를 받아 조사를 했다기보다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과시하고 김 전 위원장에게 접근하려 했을 수 있다는 의심이 강하다고 판단했다.

오세훈이 대납을 요청했다는 증명은 없었다

재판부는 김 씨가 명 씨 측에 여러 차례 돈을 보낸 사실을 객관적 증거로 인정했다. 그러나 그 돈이 오 시장 요청에 따라 특정 여론조사 대가로 지급됐다는 점은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몰래 해야 할 불법 대납을 오 시장이 후원자에게 직접 요청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봤다. 김 씨가 부가가치세가 포함된 금액을 명 씨 측 은행 계좌로 보낸 점도 불법 대납 정황으로는 이례적이라고 판단했다. 김 씨가 다섯 차례 보낸 돈이 특검 주장대로 여론조사 10건 각각의 대가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유죄를 의심할 정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의심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한다는 원칙을 적용했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1심이 무죄로 본 부분에 대한 민중기 특별검사팀의 항소도 기각했다.

특검은 상고하겠다고 했다

박노수 특검보는 선고 직후 기자들에게 “실망스러운 판결”이라며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단이 사실인정 단계의 무죄여서 상고심에서 뒤집기 어렵다고 보고 있고, 상고심 결론은 이르면 내년 1월께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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