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체육관에서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선수부 출석률이 높은 사람에게 주는 것인데, 내가 3등이다. 상금은 5만 원 정도. 1위와 2위는 모두 코치진이다. 선수부에서 나는 가장 나이가 많다. 심지어 어떤 선수는 그의 부친이 나보다 어리다.
매일 아침,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부지런한 최 코치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가 부동의 1위다. 그 옆엔 그의 직장동료 로봇 청소기가 지적질을 좋아하는 깐깐한 건물주 마냥 밑부분에 달린 브러시로 이곳 저곳의 오염물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이 두 존재의 수고 덕분에 정갈해진 체육관은 마치 이곳이 편안한 곳인양 착각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러나 선수부가 모여 온 몸의 근육을 수축시키고 팽창시키다보면 이곳이 콜로세움에 올라가는 것을 목표로 한 곳이라는 것을 다시 자각 시켜주었다.
땀 냄새가 아니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싸움터에 남아 있는 흔적 같았다. 규정된 훈련시간은 50분. 그러나 실제로는 그보다 길었다. 마우스피스를 끼운 채 쉼 없이 섀도복싱을했다. 초반에는 몸이 가볍다. 그런데 점점 숨이 차오르고,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코치는 내 펀치가 약하다고 했다. 어깨에 힘을 빼라고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힘을 빼는 것이 무엇인지도 잊었다. 단순히 계속, 그리고 더 계속 주먹을 뻗었다.
그다음엔 감독님의 신호에 맞춰 헤비백을 두들겼다. 일정한 리듬으로 주먹을 내지르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릿속이 멍해지면서 무아지경이 된다. 그런 순간이 온다면, 그것은 좋은 싸움을 할 수 있는 신호다. 하지만 나는 그 단계를 넘어 몸이 기계처럼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다. 주먹을 뻗을 때마다 어깨에서 팔로 이어지는 감각이 희미해졌다. 맞고, 때리고, 움직이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이 반복의 의미는 무엇일까. 싸움은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 것일까.
그 후에는 미트 트레이닝과 드릴 연습. 팔이 무거워지고, 점점 감각이 둔해진다. 체육관 타이머가 멍하니 나를 내려다본다. 시간은 언제나 일정한 속도로 흐르는데, 내 시간은 여기에서 멈춰 있는 듯했다. 모든 움직임이 느려지고, 주변의 소음이 잦아들었다. 그 순간, 이 훈련이 단순한 근육 강화가 아니라 나 자신을 해부하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내 몸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가. 내 의지는 얼마나 단단한가. 그리고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정규훈련이 끝나면 개인훈련이 이어졌다. 배밀기,스파이더워크,스쿼트 등 내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훈련들이다. 두 다리가 점점 무거워졌고, 몸이 공중에서 잠깐씩 멈추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았다. 러시아 문학 속 주인공들처럼 내 몸이 무언가 거대한 운명과 싸우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운명의 흐름에 맞서기 위해. “내가 그런 존재일리 없지” 마우스 피스를 문 채 입 밖으로 마음 속 생각을 겉으로 꺼내버리고 말았다. 부끄럽다. 옆에 있는 강 관장이 들었을까 염려스러워 살짝 쳐다봤지만 데드 리프트를 하느라 못 들은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못 들은 척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이 무의미한 듯한 반복을 계속해야만 했다.
폴라 심박계를 이용해 계측한 자료를 바탕으로 계산하면 2월 한 달간 태운 칼로리는 총 14,400에서 18,000 kcal 정도. 이는 마라톤 선수라면 약 221km에서 277km를 뛸 수 있는 에너지다. 풀코스 마라톤(42.195km)을 다섯 번 이상 완주할 수 있는 양이다. 만약 세단형 자동차였다면, 18km에서 22.5km를 달릴 수 있는 연료에 해당한다. 내 몸은 그만큼을 태우며 앞으로 나아갔다. 땀이 바닥에 떨어져 레테의 강을 만들었고 난 그 강을 건너며 과거를 잊었다.
기분이 묘했다. 체육관 한편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땀을 식히면서 생각했다. 노력은 인간을 배신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반드시 보상해 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쏟아붓고 나면, 몸이 남다른 방식으로 말해 준다. 그게 단순한 피로든, 만족이든, 혹은 배고픔이든 간에. 아마도 인간이란 존재는 원래 이렇게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계속 싸우고, 계속 반복하고, 그러면서도 희미한 무언가를 좇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말이다.
아직 장학금 5만 원은 받지 못했다. 아마도 카카오톡 이체로 받게 되겠지만, 가능하다면 현찰로 직접 받고 싶다. 도장 한가운데에서, 감독님의 손에서 건네받으며, 관원들의 박수를 받는 순간을 떠올려 본다. 땀과 노력이 돈이 되어 내 손에 쥐어지는 느낌을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 아마 손에 닿는 감촉이 낯설을 것이다.
그 돈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과 단백질 음료를 살 생각이다. 딱 5만 원짜리 선수가 먹을 만한 점심일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삼각김밥의 밥알 하나하나가 내 노력의 무게만큼이나 실감 나게 느껴질 것이다. 목을 타고 넘어가는 단백질 음료는 그 어느 때보다 농도가 짙을 것이다. 잔돈으로 받게 될 4만 5천원 남짓은 하루 정도 묵혔다가 은행에 직접 가서 통장에 넣을 생각이다. 그리고 5천원을 다시 보태 유니세프 같은 자선단체에 기부하려고 한다. 내 땀이 나를 살리고 누군가를 돕는다. 잠깐 이나마 위대한 존재가 될 것이다.
프로레슬러이자 프로복서 지망생 김남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