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보아온 정치인 중에 이재명 대통령만큼 표정에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인물도 드물다. ‘계엄령’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가 오가던 당일조차 국회와 외신 앞에선 그는 마치 소풍 가는 아이처럼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워싱턴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기자간담회에서 보인, 특유의 가벼움이 묻어나는 유쾌한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의 표정이 180도 바뀌는 데는 채 2시간 반도 걸리지 않았다.
한미정상회담을 마친 후 여러차례 포착된 그 ‘심각한 표정’이야말로,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가 겪은 급제동의 충격을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총 2시간 20분의 회담 중, 모두에게 공개된 30여 분의 화기애애함은 연막에 불과했다. 진짜는 1시간 41분, 즉 101분간의 비공개 회담에서 벌어졌다. 그 밀실 회담 이후, 그는 왜 동맹국 정상의 배웅도 받지 못한 채 홀로 나와야 했을까. 그 모습이야말로 무모한 질주가 막다른 길에 부딪혔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CSIS 소장 질문에 답하는 이재명 대통령 (워싱턴=연합뉴스)
정상회담 후 이 대통령의 행보는 급제동의 후폭풍 그 자체다. 굳이 CSIS의 공개된 자리에서 더 이상 ‘안미경중’은 없다며 중국과 대놓고 선을 그었다. 귀국 후 민주당 오찬에선 “강자가 너무 세게 하면 여론이 나빠진다”라며 갑자기 협치를 말하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인권’을 들어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치소 CCTV 공개를 막았다. 정권의 숙원 사업이던 검찰 해체는 본인이 나서 국민 앞에서 토론이라도 하자며 한발 물러나는 형국이다. 이 모든 것은 지난 몇 년간 일방통행하던 민주당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 일련의 조각들을 맞춰보면 결론은 하나다. 미국이 모종의, 아주 강력하고 위중한 경고를 보냈다는 것.
하지만 대통령이 이렇게 방향 전환의 신호를 보내도, 정작 열차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는 이들도 있다. 정청래 당대표는 여전히 강성 검찰 개혁을 외치고,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구치소 CCTV를 ‘의원 개인 자격’으로라도 열람하겠다며 기어이 마찰을 일으킨다. 대통령의 급제동을 무시하고 오히려 가속 페달을 밟는 이들의 모습이라니 역시 둘의 이름값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상대 진영 입장에선 이들만큼 고마운 ‘아군 같은 적군’도 없을 것이다.
사진 : 필리스 조선소를 찾은 이재명 대통령 정상회담 이후 심각해진 표정을 읽을 수 있다. [연합뉴스]
대체 그 101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이 대통령은 아마도 ‘동맹’이라는 이름 아래 작동하는 냉엄한 현실과 마주했을 것이다. 국내 지지층만 바라보며 외치던 구호가 통하지 않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정치의 민낯 말이다. 미국은 분명한 ‘레드 라인’을 제시했을 것이다. 자유 민주주의의 근간인 사법 시스템을 흔드는 검찰 무력화 시도, 예측 불가능한 대북 정책, 동맹의 신뢰를 저해하는 극단적 대립 정치에 대해 더는 용납할 수 없다는 사실상의 ‘통보’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독일 숄츠 총리가 선언한 ‘차이텐벤데(시대 전환)’를 연상시킨다. 수십 년간 이어온 이상주의를 버리고 냉혹한 현실 앞에서 국방력 강화를 선언했던 숄츠의 결단. 그 역시 푸틴의 탱크 앞에서 ‘현실’을 직시하도록 강요받았다. 이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겪은 것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 그의 정치적 몽상이 ‘한미동맹’과 ‘국익’이라는 거대한 현실의 벽에 부딪힌 듯 보인다.
물론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지만 폭주가 멈추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감지되는 건 분명하다. 대한민국이라는 열차가 탈선하기 직전, ‘동맹’이라는 이름의 마지막 안전장치가 작동한 걸까?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6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국내에서 하듯이 상대가 원하는 말만 하다 결국 모두를 적으로 만들고 폭망할 것
나라의 운명과 국익을 우선할 자가 아닌데, 정말 변했다면 지금처럼 반미로 나간다면 자신의 위치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경고를 들은 건 아닐지요.
촐랑거리는 정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잘했다고 떠들어댈 수 있는 것들이 메뉴판.. 모자.. 이런 기념품밖에 없는거 보면.. 뭐가 있긴 있었구나 싶긴합니다.
그럴리가... 이건 이재명을 죽이지 않으면 안 끝난다고 본다. 나라의 운이 다 한게 나라 팔아 먹고 온 놈에게 박수치는 ㄷㅅ같은 국민이 어디 있나. 이재명보다 이재명을 지지하는 ㄷㅅ들이 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도 만들어진 거라면 그나마 다행일테지요ㅜ
강약약강의 대명사 이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