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2024. 9. 10.
정치와 패션 - 누가 몽크스트랩 슈즈를 조롱하는가
▲ 민주당 진성준 의원의 한동훈 외모비하와 사과, 민주당 유튜브 정치의 바닥을 보여준 사건
▲ 무당유튜버가 부추기는 정치인들의 막말과 조롱, 할말 못할 말을 구분하지 않고 추락하는 정치 수준
▲ 유명인이 유행과 취향을 만드는 시대, 그러나 패션은 양날의 검, 할 일을 못하면 더 큰 비난 받을 수 있어
민주당 정책위의장인 3선의 진성준 국회의원이 자신의 ‘한동훈 외모비하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는 뉴스를 봤다. ‘외모비하’라니 대체 무슨 황당한 이야긴가 싶어 포털사이트를 찾아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세계일보가 전한 자초지종은 대략 이렇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외모를 조롱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10일 진 의장은 지난 6일 김어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공개 방송에서 "한동훈 대표 키가 180㎝가 맞느냐"는 김씨 질문에 "그날도 키높이 구두 같은 것을 신었던 것 같더라"고 답했다. 방청석에서는 웃음이 터졌고, 김씨 역시 박장대소했다. 지난 1일 한 대표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여야 대표 회담 당시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진 의장은 "제가 볼 때는 정치인 치고는 굉장히 요란한 구두였다. 금속 장식이 두 개나 달려있다"며 "하나 다는 것도 참 멋쩍은 일인데, 공연히 멋을 부리는 것 같지 않나. 신발이 참 요란했다"며 "(한 대표와) 가까이서 악수를 나누고 얼굴을 본 것은 처음인데 저는 좀 외계인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며 "얼굴 생김이나 표정이 좀 편안하고 자연스럽지 않고 많이 꾸민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색하게 느껴지고 좀 징그러웠다"고 했다. 김씨는 "좀 작위적이죠"라고 거들며 재차 웃음을 터트렸다.]
- 9월 10일 세계일보 기사 발췌

영상 속의 진행자와 진성준 의원, 방청객은 매우 큰 소리로 폭소를 터트렸다. 저것이 과연 국회의원의 발언이 맞는지, 조롱과 비하에 동조하는 저 분위기가 과연 실화인지 싶은 기괴한 광경이었다.
이번 진성준 의원의 한동훈 외모비하 발언 사건은 언제부터인가 할 말과 못할 말을 못 가리며 특정 유튜버에 좌우되는 민주당 정치의 수준이 ‘이제 이 정도까지 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까 싶다. 영상을 주의깊게 보면(굳이 찾아서 보지는 않아도 된다) ‘요란한 구두’에서 시작된 진성준 의원의 한동훈 대표 외모평가는 진행자의 추임새와 낄낄거리는 웃음소리, 청중들의 열띤 반응에 호응하듯 서서히 수위가 올라가더니 결국 ‘외계인’, ‘징그럽다’ 같은 막말을 하며 선을 넘는다. 타인의 외모에 대한 그런 뒷말은 술자리 사담으로도 민망한 일이지만 거대야당 민주당을 사실상 움직이는 유튜브 채널에서는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거리일 뿐이다.
말 나온 김에, 진성준 의원이 지적했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요란한 구두’ 이야기를 해보자.

한동훈 대표가 주로 신는 구두는 ‘몽크스트랩’ 슈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중세 유럽의 ‘수도사’(Monk) 들이 신던 신발에서 기원되었다. 발등에 버클을 채워 신는 이 구두가 현대 남성패션의 요소로 자리잡게 된것은 ‘윈저 공’ 으로 더 많이 알려진 영국 국왕 '에드워드 8세' 덕분이다. 군주로서는 무능했고 2차 대전 시기에 히틀러와 교류하는 등 공인으로서의 판단력은 재앙에 가까웠지만 패션 감각이 매우 뛰어났던 윈저 공은 당시 서구 세계 최고의 패션리더였다. 그가 입거나 착용한 것은 그대로 유행이 되었고 미국의 의류공장과 재단사들은 '윈저 공 스타일' 을 따라하기에 바빴다. 윈저 공은 자신의 크지 않은 키(170cm 추정) 와 체격을 보완하기 위해 의상을 세심하게 선택했고 재단사에게 의견을 제시하기로 유명했는데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 타탄 체크 패턴, 아가일 체크 양말 등 현대 남성복의 여러 요소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정립시켰다.


퇴위 후에 바하마 총독으로 있었던 것 외에 공무 없이 사냥, 무도회. 크루즈 여행, 연극, 전통의상 코스프레 등 여가를 즐기며 한량으로 살아갔던 윈저 공. 그는 끈을 매지 않고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정장구두를 원했는데 맞춤구두 회사였던 존롭(John Lobb) 에서 그의 필요에 맞게 제작한 것이 바로 몽크스트랩 슈즈다.
몽크스트랩은 실용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묵직한 버클 때문에 신었을 때 화려한 느낌을 준다. 버클이 발등을 넓게 덮는 특성상 발등이 낮고 발의 모양이 긴 사람들에게 잘 어울리며 디자인 특성상 키높이 깔창 같은 사술을 쓸 여지가 적다. 처음부터 키높이용으로 구두틀을 제작할 수는 있겠지만 키높이 깔창에 두툼한 발등 버클까지 더해지면 모양이 너무 뭉툭해지기 때문에 굳이 몽크스트랩을 신는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남성들의 복장에 보수적인 편인 우리나라에서는 몽크스트랩을 신는 사람은 ‘패션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 ‘멋을 많이 부리는 사람’ 으로 인식되기 쉽다. 당장 여의도나 광화문 등 정장맨들이 많은 거리에서도 로퍼나 끈을 매는 옥스퍼드를 신은 이들이 대부분이고 몽크스트랩을 신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패션매체와 공공기관, 국회를 거쳐 일했던 나 조차도 패션종사자가 아닌 일반 사무직 남성이나 기업인, 특히 중년의 공무원이 몽크스트랩을 신은 모습은 거의 만나지 못했을 정도다.(여의도에서는 딱 두명 봤다. 30대 남성 기자 1명, 그리고 한동훈 대표)
법무부장관시절부터 특유의 뿔테안경(올리버 골드스미스), 벨트(나가사와벨트의 코도반 벨트) 등 상대적으로 덜 대중적인 브랜드들을 착용하고 매진시키며 화제가 됐던 한동훈 대표. 서울의 모 백화점 남성액세서리 코너에는 한 때 '한동훈 머플러', '한동훈 안경' 을 찾는 이들로 꽤나 붐볐다고 한다. 그가 50대 공직자라는 것을 굳이 감안하지 않더라도 패션에 관심이 많은 편(그것도 매우 많이..)임에 분명하다.

윈저 공이 그랬듯 시대의 스타일은 패션디자이너가 아니라 유명인들이 만들어간다. 케이팝스타와 같은 연예인, 인플루언서들의 한 마디와 인스타그램 포스팅(많은 경우 유료광고) 에 따라 시장이 형성되고 완전 무명의 브랜드가 ‘대박’을 내기도 한다. 유명인이 착용했다는 이유만으로 한 업계가 살거나 죽고 저가의 유사품들이 줄줄이 나온다. 새로운 유행과 취향이 만들어지고 돈과 시장이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은 흥미롭고 그런 의미에서 한동훈 대표는 주목할만한 인물이다. 경쟁적으로 '검소해 보이기' 만을 추구하는 정치인들 사이에서, 한대표는 최근 몇 년 동안 남성 정치인 중 거의 유일하게 패션으로 화제를 일으켰고 단발성일지언정 유행과 소비를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한 대표에게 진짜 주목하고 기대하는 것은 패션에 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패션이나 외모로 화제성을 일으킨 이가 공인일 경우, 기대에 못 미치거나 잘못을 저지른다면 패션으로 주목받았던 과거는 곧장 '흑역사'가 된다. 그리고 근본적인 능력이나 자격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세게('외모(또는 옷)에 신경쓸 시간에 일을 잘 했으면' 같은 비난은 매우 쉽다) 가해질 수 있다. 공인, 공직자가 패션으로 주목받는 것은 유명세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조심스레 다뤄야 하는 '양날의 검'인 셈이다.
윈저 공도 지금이야 현대 남성패션의 선구자로 회고되지만 말년에 평판이 바닥을 치면서 각광받았던 그의 패션 감각조차 특권층의 방탕함으로 치부된 적이 있다. 김건희 여사는 경위야 어찌됐든 '미술전문가'라는 간판과 패션으로 잠깐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신상과 경력에 대한 숱한 거짓과 잘못된 처신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그의 패션 취향이 대중의 비호감을 더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게다가 '디올백 뇌물수수' 사건과 관저에 설치한 'BTS 정자' 사건이 드러나면서 패션이나 예술과 김여사의 관계는 거의 돌이킬 수 없게 되었는데 패션브랜드들(매출보다 이미지를 중시한다면) 은 혹시나 어떤 계기로든 김여사와 연관될까봐 쉬쉬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몽크스트랩 슈즈를 몰랐던 진성준 의원을 위해 첨언하자면, 한동훈 대표처럼 의상과 외모에 신경쓰며 투자하는 이들은 남의 눈보다 자기의 특별한 취향과 그것을 통해 보여지기 원하는 내 모습의 '이상향'(요즘 '추구미' 라고 하는) 에 더 몰입하는 사람들이다. 누군가가 ‘네 구두 이상해’라고 해봤자 '잘 모르는 사람의 지적질' 그 뿐인 것이다.
또한, 타인의 외모에 대한 언급은 그것이 찬사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평가'인만큼 내놓고 해서는 안 될 무례라는 것은 오랜 상식이다. 그래서 유감스러운 심정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인을 조롱했던 어떤 유튜브 진행자와 진성준 의원의 외모나 스타일에 대해 굳이 논평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진의원 주변의 누군가가 또 독특한 신발을 신는다거나, 튀는 차림을 했는데 그것이 낯설고 불편하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것이 가장 무난한 태도다. 정 궁금하고 이해가 안 된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어떤 제품이고 스타일인지 알아보고 말을 얹을 일이다. 타인의 취향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키높이 구두 같은 것’ 이라고 조롱하거나 진행자가 유도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다른 이에 대해 ‘외계인’ 운운하며 비하하는 것은 자신에게 화살을 쏘는 것과 다름없다.
윤석열정권의 오만과 무능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진의원 본인이 공들이는 금투세 논의가 불붙고, 전정권과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대한 수사 칼날이 들이닥치고 있는 이 시기에, 거대야당의 정책위의장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로 물의를 일으키고 사과에 이르게 된, 이 모든 과정들이 답답하고 안타까워서 덧붙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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