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 2시간 전

케이팝은 소녀들의 어린 시절을 소비해야만 하는가

13세 미성년자 아이돌, 과연 그 아이들은 괜찮을까?

음악과 춤을 통해 젊음과 유사연애를 파는 케이팝 산업의 모순과 한계

세계를 재패한 케이팝, 이제 산업의 구조를 재설계 할 때



에이투오 라이트의 오아. 2013년생으로 만 13세다. (사진:에이투오 엔터테인먼트)
에이투오 라이트의 오아. 2013년생으로 만 13세다. (사진:에이투오 엔터테인먼트) 


이수만이 선보인 걸그룹 A2O LITE(에이투오 라이트)가 데뷔하자마자 화제다. 데뷔곡 'NEON'은 발매 29시간 만에 멜론 TOP100 1위를 기록했고 해외 반응도 뜨겁다. 마치 ‘소녀병기’ 같다는 평가가 나오는 정교한 군무에 케이팝의 전통적 문법이 반영된 음악도 흥미롭다. 그런데 멤버들의 나이를 확인하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평균 연령은 15세. 아홉 명 가운데 세 명은 2013년생으로 이제 겨우 13세다. 음악과 퍼포먼스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지만 어린 멤버들의 짧은 의상과 앨범 커버 사진의 연출을 둘러싼 논란도 일고 있다.

케이팝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감정은 낯설지 않다. 우리는 이미 26년 전에 만 13세의 나이로 데뷔한 보아를 알고 있다. 그 전후로도 아이돌들은 거의 10대 였고 소녀를 넘어 어린이와 같은 스타일링으로 논란을 일으킨 그룹도 꾸준히 있었다. 무대를 보며 즐기다가도 그 무대를 만드는 어린 여성들의 나이와 또래들의 삶을 생각하면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저 아이돌, 아니, '아이들'은 괜찮을까?

케이팝 산업에는 근본적인 딜레마가 있다. 음악과 춤을 판매하는 동시에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의 젊음과 아름다움, 성적 매력까지 함께 판매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케이팝만의 특성은 아니다. 대중음악과 영화, 광고, 패션 산업은 오랫동안 젊고 아름다운 육체를 상품화해 왔다. 케이팝은 여기에 특별한 요소 하나를 더한다. 팬과 스타 사이의 친밀감을 체계적으로 생산하고 판매한다는 점이다. 팬들은 음악을 듣고 콘서트를 찾는다. 아이돌의 일상을 구독하고, 굿즈를 구입한다. 팬 소통 어플을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때로는 연인에 가까운 정서적 친밀감, 이른바 ‘유사연애’의 감정을 경험한다. 이런 사업 모델에서 젊음과 아름다움, 특히 성적 매력은 강력한 자산이 된다. 따라서 아이돌은 가장 젊고, 가장 아름답고, 성적으로도 매력적이어야 한다. 

특히 여성 아이돌에게, 한국과 같이 보수적인 사회에서는 더욱 구체적이고 모순적인 요구가 따라붙는다. 성적으로 매력적이어야 하지만 지나쳐서는 안 된다. 섹시함을 표현하더라도 동시에 순수해야 한다.  날씬해야 하지만 아무거나 털털하게 잘 먹는 이미지를 유지해야 한다. 끊임없이 아름다워야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은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이 정신분열적인 요구사항들은 단순한 외모 경쟁을 넘어 여성에게 요구되는 ‘아름다움’, 그리고 성역할의 극단적인 압축판처럼 보인다.

멕시코 길거리에서 타코를 먹는 카리나와 지젤. 한국에서 여자아이돌은 말랐지만 잘 먹어야 한다. (사진: 에스파 유튜브)
멕시코 길거리에서 타코를 먹는 카리나와 지젤. 한국에서 여자아이돌은 말랐지만 잘 먹어야 한다. (사진: 에스파 유튜브) 

케이팝 산업이 비판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성의 신체를 상품화하고 가부장적인 미적 기준을 재생산하는 산업에 돈을 지불하면서 어떻게 평등한 사회와 여성의 해방을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아예 케이팝 산업을 불매하자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더 근본적인 문제 제기도 있다. 우리가 지금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조차 사회적으로 학습된 결과라는 여성주의적 비판이다. 실제로 시대와 문화에 따라 아름다움의 기준은 끊임없이 달라져 왔다. 조선시대에는 둥근 얼굴에 통통한 여성이 미인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작은 얼굴에 오똑한 코, 마른 듯 하면서 탄탄한 몸매가 미인으로 간주된다. 오늘날 케이팝 산업의 이상형인 마른 몸과 어려 보이는 얼굴, 순수함과 성적 매력을 동시에 갖춘 여성상 역시 2026년 이 시대가 만들어낸 취향의 산물이다. 

산업의 특성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산업은 소비자의 취향을 따르기도 하지만, 그 취향을 적극적으로 강화하고, 때로 새롭게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케이팝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판매하는 산업이 아니다. 무엇이 아름다운지, 여성은 어떤 몸과 얼굴을 가져야 하는지, 어떤 표정과 말투와 태도로 매력적이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규정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형성된 미의 기준, 욕망은 반드시 나쁜가

그러나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어떤 욕망이 사회적으로 형성되었다면 그것은 나쁜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인간의 취향과 욕망은 대부분 사회와 문화 속에서 만들어진다. 문제는 그 욕망이 존재한다는 사실보다, 특정한 아름다움의 기준이 유일한 정답처럼 강요되고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한 노력과 비용이 특정 집단, 특히 어린 여성들에게 집중된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의 기준을 비판하는 것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개인을 비판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조심스럽지만, 우리가 진짜로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람들이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는지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을 자유를 갖는 것,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아름다울 자유를 제한하는 권력관계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케이팝 소비를 여성에 대한 억압에 동참하는 행위로 규정하는 데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케이팝은 여성의 신체를 상품화하는 산업인 동시에 수많은 여성에게 즐거움과 자신감, 문화적 소속감과 창작의 영감을 제공하는 문화이기도 하다. 여성 아이돌 역시 단순히 산업 안에서 착취당하는 대상만은 아니다. 그들은 훈련된 예술가이자 노동자이며, 때로는 성장해서 자기 레이블의 디렉터나 CEO로서 새로운 여성상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된다. 

과거 하이패션 업계에서도 모델들의 이미지에 대해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1990년대 케이트 모스가 상징했던 '헤로인 시크'의 시대, 패션계는 초췌한 이미지에 극도로 마른 몸을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내세웠다. 케이트 모스 이후 북유럽 출신의 깡마른 10대 모델들이 패션계를 주름잡으며 저체중과 섭식장애, 청소년의 건강 악화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그 결과 프랑스와 스페인 등에서는 저체중 모델의 활동을 제한하는 규제를 도입했고 너무 마른 모델은 표지모델로 쓰지 않는다는 잡지사도 있었다. 

케이트 모스의 캘빈클라인 광고(사진: 캘빈클라인 언더웨어 광고)
케이트 모스의 캘빈클라인 광고(사진: 캘빈클라인 언더웨어 광고)


그러나 몸무게에 기준선을 긋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마른 모델들이 밀려나지도 않았다. 모델에게 마른 몸을 요구하는 하이패션 산업의 구조와 아름다움에 대한 사회적 욕망은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건강한 체중을 유지하는 것과 건강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것은 같은 듯 또 다른 문제였다. 패션업계의 미적 기준은 규제가 아니라 유행과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서서히 움직였다. 

문제는 '자유로운 선택' 여부다, 그런데 자유롭기는 한가?

케이팝 산업에도 법적 보호장치가 있다. 몇몇 아이돌들의 '노예게약' 논란, '청소년 노동' 에 대한 공론화 덕에 법적 규제도 생겼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제21조는 청소년 연예인에게 과도한 노출이나 선정적인 표현, 결석과 자퇴, 과도한 외모 관리 등을 강요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제22조는 15세 미만 청소년의 활동시간을 원칙적으로 주 35시간으로 제한한다. 2026년에는 「대중문화예술분야 연습생 표준계약서」와 「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또는 연습생) 표준 부속합의서」도 개정돼 청소년 연습생의 학습권과 자유선택권을 보호하는 기준을 마련했다.  

그러나 법과 계약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곧 청소년의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특히 법이 금지하는 것은 주로 명시적인 강요와 일정한 활동시간의 초과다.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회사가 다이어트를 하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데뷔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불안이 연습생들을 스스로 굶게 만들 수 있다. 학교를 그만두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학업을 포기하는 선택을 하게 될 수 있다. 겉으로는 자발적인 선택이지만, 그 선택을 만들어내는 환경은 자유롭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어린 나이에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는 것 자체를 금지해야 할까. 열세 살의 소녀에게도 무대에 서고 싶은 꿈이 있을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이나 체육처럼, 일찍부터 전문적인 훈련을 받고 프로가 되는 일은  다른 분야의 영재 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어린 시절부터 훈련한 예술가들의 성취를 우리는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어린 예술가가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키는 것과, 성인들의 상업적 기획 속에서 자신의 신체와 이미지, 사생활과 친밀감까지 상품화 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미성년자인 아이돌이 동의한다고 해서 그 '자발적 선택'의 모든 결과를 예상할 수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술의 발전이 아이돌 산업에 상상도 못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최근 A2O LITE의 어린 멤버들을 둘러싼 논쟁은 의상이나 앨범 커버에만 머물지 않는다. 멤버들의 AI 아바타를 활용한 유료 팬 소통 서비스 '블루밍톡(BloomingTalk)'까지 등장했다. 실제 얼굴과 목소리, 말투를 구현한 AI와 팬들이 영상통화를 하듯 대화할 수 있도록 만든 서비스다. 13세 멤버 세 명도 이 서비스에 포함됐다. 이제 아이돌 산업은 실제 신체와 이미지뿐 아니라 디지털 공간에서 재현된 인격과 친밀감까지 상품화하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미성년자의 이미지와 정체성을 어디까지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멤버들이 성인이 된 뒤 자신의 과거 디지털 이미지에 대한 통제권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새롭고, 너무나 중요한 질문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 아무도 답은 모른다. 

또한 아이돌 산업에서의 성공은 극소수에게만 허락된다. 데뷔하지 못한 무수한 연습생들, 데뷔했지만 주목받지 못한 아이돌들은 어떻게 될까. 너무 이른 나이에 자신의 가치가 외모와 인기, 돈으로 평가되는 경험을 한 청소년들의 삶은 성공한 스타들의 화려한 무대 뒤에 가려지게 되는데 이들에 대한 안전장치는 허술하다. 

어린 소녀들이 무대에 서도 될까? 된다면 몇 살 부터일까? 

그리고 그 무대에 서기 위해 어린 시절의 무엇까지 포기하도록 요구할 수 있을까? 

상상도 못할 부와 명성을 이룰 수도 있으니 사생활과 어린시절을 포기하라고 해야 하나? 

만약 그것이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봐야 하나? 

13세가 그런 큰 인생의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기는 한가? 

AI시대에 아이돌의 정체성, 이미지의 상업적 활용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나? 

26년 전에 13살이었던 보아와 지금 13살인 에이투오를 보며 이런 질문들을 떠올려본다. 하루를 케이팝으로 시작하고 케이팝으로 끝내는 입장에서 마음이 불편하다. 누구를 향하는지 모를 죄책감까지 든다. 


2003년, '아틀란티스 소녀'를 부르는 보아. 데뷔 3년차에도 16세였다. (사진: MBCkpop)
2003년, '아틀란티스 소녀'를 부르는 보아. 데뷔 3년차에도 16세였다. (사진: MBCkpop)


세계인의 것이 된 케이팝, 산업의 규칙을 재설계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양립할 수 있다. 케이팝을 사랑하면서 케이팝 산업을 비판할 수 있다.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음악적 성취를 인정한다고 해서 그 산업이 요구하는 아름다움의 기준까지 무지성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산업의 성차별적 구조를 비판하고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의 재능과 성공을 응원할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이 본능이든 학습된 것이든, 아름다움의 추구가 산업의 그릇된 관행까지 정당화할 순 없다. 사람들은 더 저렴하고 품질 좋은 스파 브랜드 제품을 원하지만 그 욕망이 빈곤한 어느 나라의 아동 노동을 정당화하지는 않는 것 처럼, 어리고 매력적인 아이돌을 원하는 시장이 존재한다고 해서 미성년자의 학업과 건강, 자기결정권을 희생시켜도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문제를 해결하는 것, 케이팝을 향한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그 일은 케이팝을 불매할 것인가, 소비할 것인가라는 논의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불매는 산업을 변화시키는 압력이 될 수 있지만, 메가트렌드가 된 케이팝에 불매가 가능할지도 의문이고 통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진짜 필요한 것은 이 산업의 규칙을 바꾸는 일이다. 연습생과 청소년 연예인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미성년자의 성적 이미지를 상품화하는 방식에 명확한 책임을 부과하며, 기업이 어린 스타의 신체와 시간뿐 아니라 디지털 이미지와 팬과의 친밀감까지 어디까지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지 사회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책임의 중심에는 기업이 있어야 한다. 아이돌의 의상과 안무, 카메라 연출, 팬 소통 상품을 기획하고 결정하는 것은 대부분 성인 제작자들이다. 어린 아이돌 멤버들의 선택과 재능을 존중하면서도 성인 기획자들의 판단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케이팝은 이미 세계적인 산업이 됐다. 음악과 퍼포먼스의 수준에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면, 이제 그 산업에서 일하는 가장 어린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방식에서도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선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A2O LITE의 열세 살 멤버들이 20년 뒤 자신의 데뷔를 어떻게 기억할지는 지금 알 수 없다. 다만 그 기억이 자부심이 되게 만드는 것은 음원차트 성적만이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산업의 책임이다. 

케이팝이 이제 증명해야 할 것은 얼마나 재능있는 소녀를 얼마나 대단한 스타로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다. 그 소녀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잃지 않고도 스타가 될 수 있는가, 그리고 스타가 되지 못하더라도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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