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 7시간 전
박원순을 소환한 대통령의 X, 끝나지 않은 2차 가해
이재명 대통령이 X메시지를 통해 박원순을 소환해 반발을 일으키고 있다
고위직 성범죄는 이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건만, 정치권과 대통령의 인식은 안일하기만 하다
최고 권력자가 가해자를 '샷아웃' 하는 걸 목격했을 피해자는 어찌하랴

일반 회사를 다니다 거의 15년 동안 국회, 정당, 청와대에서 여러 직함으로 일하면서, 법을 만들고 국가의 정책을 이끄는 국회와 정부가 한국사회에서 가장 느리고 남성 중심적이며 그래서 보수적이라는 것을 절절히 체감했다.
국회, 정부, 청와대, 심지어 국회의원의 지역사무실까지. 그 어디에도 같이 일하는 동료 선배 중 여성의 숫자는 극히 적었다. 그 적은 숫자의 여성들 조차도 대부분 남성인 리더를 보좌하는 또 다른 남성을 보조하는 역할에 머무르기 일쑤였다. 그저 여자라는 이유로 역량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 또한 수두룩하게 봤다. 여전히 국회에선 '같은 값(경력) 이면 남자 뽑지' 라는 말이 채용의 '룰' 로 통한다.
그런 속에서 2018년 어느 저녁에 폭로된 안희정 사건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차기 주자로 각광받던 젊은 이미지의 도지사가 비서에게 위계에 의한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증언이 피해자의 입을 통해 라이브로 나오는 순간의 놀라움. 그 때 언제 어디서 그 뉴스를 봤는지, 그 때 누구와 뭘 하고 있었는지까지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이후 2020년에 오거돈과 박원순 사건이 연달아 터졌다. 문재인정부 초반, 차기 주자들이 있어 20년 집권도 문제없다던 누군가의 호언장담은 그렇게 허무하게 깨졌다. 차기 대권주자라던 충남지사, 부산시장, 서울시장 현직이던 이 남성 리더들의 성범죄는 국민들에게 큰 실망과 혐오감을 남겼다. 또한, 정치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크나큰 부담과 상처를 줬다.
잘못을 저지른 가해자는 분명 남성들인데 그 사건을 접한 여성들이 되려 위축되고 배제되는 부조리가 국회와 지자체 곳곳에서 대놓고 벌어졌다. 박원순 자살 당일에 누군가가 우리 직원들에게, '이래서 여자를 뽑으면 안돼' 라는 소리를 했다는 걸 들었을 때 얼마나 화가 났던가. '조직에 여자가 있으면 아무래도 불편하다', '그 양반은 다 좋은데 여자문제가 있다' 운운하는 헛소리 역시 수도 없이 들었다. 기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안희정의 비행을 짐짓 꾸짖다가 '나는 그래서 여자 안 뽑아(또는 승진 안 시켜)' 라는 말을 무슨 대단한 도덕률인양 떠벌리는 남자 의원들도 있었다. 내가 보좌하는 의원이 남성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며 '그러니까 김보가 행동을 바로 해야 된다' 는 말 같지 않은 조언은 또 어떠했나. 지자체에서는 아예 단체장 비서실에 여성 비서를 뽑지 말자는 말이 나왔다. 잠재적 피해자를 아예 없애서 성폭력 범죄를 '예방' 하자는, 기괴하게 전도된 'K-펜스룰'이었다.
더욱 어이없는 지점은 세 가해자에 대한 사뭇 다른 '대우' 였다. 셋 다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지만 소위 '민주 진보 진영' 안에서 그들은 각각 다르게 취급됐다. 안희정은 김지은의 증언 몇 시간 만에 신속하게 제명됐고 오거돈도 사진 증거들이 공론화 되면서 배제됐지만 박원순은 다르게 보는 이들이 많았다. 그가 과오의 댓가를 치르는 대신 자살로 사건을 끝내버렸기 때문에, 피해가 충분히 입증되고 평가될 여지가 막혀버렸다. 가해자의 도피로 피해자가 끝까지 맞설 수도 없게 된 상황에서, 박원순이 저지른 일은 '제기된 의혹', 또는 '미제사건' 처럼 로 여겨졌고 피해자는 '피해호소인' 으로 불리며 박원순의 비행을 차마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의 2차 가해를 버텨야 했다.
때문에 큰 선거판이 벌어질 때 마다 민주당 정치인들 사이에서 박원순에 대한 회상의 메시지가 툭 튀어나오곤 했다. 대선 때는 대의원 한 표가 급하다며 '박원순을 품어야(추모하고 언급하는 등의 행위..)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 잡는다' 는 제안을 내놓는 의원들도 있었다. 그 때 마다 여성 보좌관들, 실무자 들은 화를 삭이며 회의실에서 싸워야 했다. 박원순을 품어야 한다는 이들은 '미투가 무슨 유행이냐', '박시장이 그랬다는 증거있냐' 라고 언성을 높이다가 말이 안 통한다 싶으면 '어떻게 그 분이 그랬다고 생각할 수 있냐' 며 감성팔이를 했다. 그들 중에 일부가 과거에 미투 가해자로 지목되었던,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박원순 사건 직후인 2020년 8월에 나왔던 정춘숙 전 의원의 <시사인> 인터뷰가 다시 보인다. 정 전 의원은 '여성의전화' 출신으로 박원순의 28년 동지다. '성희롱' 이라는 개념이 젊은 박원순 변호사의 노력으로 '법률적 시민권'을 얻는 과정을 지켜봤던 그는 동지인 박원순의 죄를 확신하면서도 추모하고, 실망한 채로 조문을 가고 추모글을 올리며 양쪽에서 욕을 먹는, 괴롭고 모순적인 시간을 견뎠다. 그리고 박원순을 미처 '탈상'하지 못한 채로 이렇게 말했다.
"절대 그럴 수 없는 사람이 그러는 걸 너무 많이 봤다."
"박원순을 빼고 봐야 보인다. 그럴 리 없는 사람은 없다."
"피해자의 고통이 너무 크다. 피해자를 향한 공격을 멈춰야 한다. 정치 지도자들도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바로 이틀 전, 이재명 대통령이 엑스 게시글로 박원순을 회고했다. 최근 자신의 잦은, 그리고 격렬한 에스엔에스 행보가 비판을 받으니 돌연 박시장을 소환한 것이다. 역시나 에스엔에스를 많이 활용했던 박원순과의 인연을 강조하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함일까? 그러면서 박원순이 '뛰어난 아이디어맨' 이며 '소통의 달인' 이었다고 추켜세운다.
2030 여성의 촛불로, 빛의 혁명에 빚졌다고 수시로 말하던 대통령이,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자살한 성범죄자를 아련하게 추억하는 글을 올리는 걸 보다니. 눈을 의심하며 참담한 심정에 쌓이는 한편 피해자를 걱정한다. 비겁하게 도망친 가해자 때문에 끝까지 나서지도 못하고, 진영의 완장을 찬 이들에게 온갖 모욕을 당했던 피해자는 지금 어떨까. 짐작조차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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