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이 ‘재정 빨대’? 어떤 도지사의 한심한 인식
도 재정부담을 강조하다가 망언을 해버린 추미애 지사
5선 의원, 당대표, 장관을 지낸 도지사의 소방에 대한 인식이 참담하다
'재정 비상 상황' 강조하며 본인은 내로남불? 누가 공감하겠나

16일 경기도 부천의 한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진화에 투입된 소방관들이 크게 다쳤고, 한 명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다. 현장을 찾은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소방관들의 헌신에 감사를 표했지만, 일부 소방관들은 추 지사에게 등을 돌렸다. 사흘 전 추 지사가 국정감사장에서 소방을 '재정 빨대'라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권영진 의원이 재정 문제를 질의하자 추 지사는 "소방이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고 답했다. 이어 2027년 소방 인건비가 1조 1천억 원, 사업비가 약 5천억 원에 달한다며 예산 부담을 토로했다. 소방 인사와 관련해서는 자신에게 결재가 올라오지만 해당 인력의 업무와 능력을 알기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소방공무원 노동조합들이 거세게 반발했고, 급기야 소속 정당인 더불어민주당마저 16일 공식 사과했다. 그러나 정작 추 지사는 부천 화재 현장에서 소방 노조의 반발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에게 얼굴을 찌푸리며 "그런 얘기 하지 마시죠"라고 답했다. 화재 현장이라는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자신의 발언에 대한 질문을 제지한 것은 부적절했다. 결국 추지사가 공식 사과했지만 소방공무원과 야당의 공세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온라인 여론도 냉랭하다. .
재정 빨대 대신 재정 확대를 말했어야
물론 경기도의 소방재정 부담은 현실적인 문제다. 소방공무원은 2020년 4월 국가직으로 전환됐지만, 소방재정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지방정부가 부담한다. 경기도 자료에 따르면 2026년 전국 소방재원 중 중앙정부의 소방안전교부세와 국고보조금 비중은 10.7%에 불과하다. 도지사가 이런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소방을 '골치 아픈 재정 빨대'라고 부른다면 선을 넘은 망언이 된다. 재정 부담이 문제라면 중앙정부에 지원 확대와 제도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왜 그 과정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소방이 골칫거리로 묘사되어야 하는가.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추 지사가 갑자기 나타난 정치 신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5선 국회의원에 민주당 대표와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중진 정치인이다. 그런 인물이 소방공무원의 노고를 폄하하는 듯한 발언을, 그것도 국정감사장에서 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소방은 화재 진압뿐 아니라 재난 예방과 구조·구급을 책임지는 필수 공공서비스다. 시민이 위험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 역시 소방관들의 노동으로 지켜진다.
여당도 우려하는 '추미애 식 도정'
추 지사는 지난 7월 취임한 뒤 한 달여 만에 '재정 비상 상황'을 선언하고, 전임 도정에서 누적된 부담을 강조하며 5,465억 원 규모의 세출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직원 체육대회 비용과 민생·복지예산까지 삭감하며 고통 분담을 요구했다. 그러나 경기도는 추 지사의 관사로 도청 인근 47평형 아파트를 12억 2천만 원에 전세 계약했다. 김동연 전 지사가 자비로 주택을 마련해 거주했던 것과 대비된다. 7,700만 원대의 새 관용차 구입도 논란이 됐다. 추 지사는 관사 보증금은 반환되는 돈이며 관용차 구입은 전임 도정에서 결정됐다고 해명했다.
법적·행정적 절차가 온당했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도민과 직원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요구하면서 지도자 자신에게는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듯한 모습이 어떻게 비치겠는가. 재정이 그토록 위중하다면 지도자부터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는가.
복지예산을 둘러싼 갈등도 있었다. 경기도의회 예결위 소위원회에서는 여야가 어린이집 운영비와 보육교사 처우개선비 등 민생예산 429억 원 복원에 합의했다. 이후 경기도와의 협의 끝에 지난 12일 본회의에서 최종 216억 원이 복원됐다. 여야가 함께 복원을 요구할 만큼 민생에 필요한 예산이었다는 뜻이다.
추 지사에 대한 비판은 야당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민주당 소속 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들도 충분한 협의 없는 일방적 예산 감축에 문제를 제기했다. 도정보다 '검찰개혁'을 둘러싼 당내 갈등에 지나치게 몰두한다는 비판이 여당에서 거세게 나온다.
공감능력 없는 행정? 정치? 그게 무슨 소용인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06년 한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이 나라에서는 재정적자에 관한 이야기가 많지만, 우리는 공감능력의 결핍에 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능력은 따뜻한 말이나 눈물을 보이는 감수성이 아니다. 정책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행정의 숫자 뒤에 있는 인간의 삶을 볼 수 있는 능력이다. 정치의 출발점이자 유능한 행정의 필수 조건이다.
추 지사의 발언이 실망스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랜 정치 경력을 지닌 여당 중진 정치인이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공공서비스를 어떤 시각과 언어로 바라보는지 드러낸 발언이기 때문이다.
도정을 맡은지 6개월도 안 된 시기에 온갖 논란과 비판에 직면한 추미애 경기도지사. 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의 주장을 더 극단적인 표현으로 강조하는 일이 아니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마음, 공감능력을 갖고 도민의 삶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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