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2024. 11. 17.
[김변칼럼] 이보다 최선일 수 없는 이재명 선거법 판결

사실과 판단
김변은 일식을 즐기지 않는다.
이러한 내 취향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평가의 문제, 주관적 정신작용의 영역이다. 계량화 하여 측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객관적 잣대로 증명할 수 없는 상대적 가치에 해당한다.
반면, 이러한 평가영역의 재료가 되는 개개의 사실은 다르다. 식사에 초대하면서 어떤 식당을 예약할지 물어오는 경우 난 ‘일식집만 빼고 다 괜찮다’는 말을 한다. 내가 이런 의견을 낸 것은 평가가 아닌 ‘사실’의 영역이다. 이러한 객관적 사실을 통해 평가에 해당하는 ‘김변은 일식을 즐기지 않는다’라는 보편적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평가는 다양할 수 있으니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래서 뭔가 설명하기 위해 그 전제되는 사실을 적시하는 것으로 의견표명은 충분하다. 누가 ‘김변 일식 좋아하나?’라고 물으면 ‘싫어해’라고 할 필요 없다. ‘약속 잡을 때 일식집은 빼달라더라’라는 사실만 언급하면 그만이다. 평가는 사실을 들은 사람의 몫이다. 그 상대가 ‘아니야 그래도 일식을 싫어할 리가 없다’라고 평가를 달리할 수 있다. 사실의 영역과 판단의 영역은 그렇게 다른 것이다.
재판부 최선의 판단
사람들이 토론이나 논쟁에서 범하는 오류중 하나가 이 부분이다. 각자 자신의 판단을 가져와 상대에게 주장하다보니 동어반복에 제자리걸음이 되는 것이다. 재판에서도 마찬가지다. 재판은 사실을 다투는 과정이다. 판단은 법원의 영역이다. 사실의 확정과 규범적 판단의 과정이 분리되어 있고, 이와 연동되어 당사자의 역할과 법원의 기능이 법적으로도 나뉘어져 있다. 당사자의 법률적 주장은 법원이 고려할 필요가 없다. ‘법원을 구속하지 않는다’라고 표현한다. 재판이란 소송 당사자가 결론에 이르는 개별 사실을 증명해 법원이 그로부터 추단되는 규범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가이드 하는 절차인 것이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공직선거법 재판에서, 법원은 이른바 ‘김문기 몰랐다’ 혐의 부분에 대해 무죄로 판단 하였다(일부무죄). 그러면서도 포괄일죄를 구성하는 ‘김문기와 골프치지 않았다’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였다. 결과적으로 위 일부무죄 부분은 이에 흡수되어, 결국 2건의 공소사실(김문기 몰랐다, 백현동 협박 받았다) 모두에 대해 유죄(경합범)가 선고된 셈이다. 피고인 이재명의 완패다. 즉, 이재명의 뻔뻔한 거짓말이 판결로 공식 인정된 것이다.
‘김문기 몰랐다’는 평가의 문제, 즉 주관적 인식의 문제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김문기씨를 몰랐다고 주장하기 위해 동원했던 거짓말 ‘김문기와 골프치지 않았다’는 사실의 문제이다.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에서 처벌대상으로 삼고 있는 구성요건은 객관적 ‘행위’에 대한 거짓말이기 때문에 법원이 주관적 ‘인식’에 해당하는 ‘몰랐다’에 대해 이 법을 적용하는 것은 월권이 될 수 있다. 판결문에도 이 점을 밝히고 있다. 물론 인식의 문제가 객관화 되는 정도에 이르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이를 사실의 부인으로 보아 이 법을 적용할 여지도 있다(지난 김변 칼럼). 그러나 이 사안에서는 굳이 법원이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바로 ‘김문기와 골프치지 않았다’라는 사실에 대한 거짓말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재명을 무너뜨린 것은 '사족 붙이는 습관'
이재명이란 사람은 참으로 독특한 사람이다. 일반 사람이라면 감히 넘으려 생각하지 못하는 선을 아무렇지 않게 범하는 특성이 있다. 뻔한 거짓말과 상황에 따라 지어내는 스토리텔링을 보면 혀가 내둘러진다. 한 예로, 아는 사람들 사이에 그의 아버지의 정체는 여전히 기괴한 스토리로 남아 있다. 이러한 현상은 그동안 그를 견제한 반동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거짓말을 지적하거나 그에 대항하는 사람이 없으니 절제할 필요도 없었다. 자신의 세계관 속에서 무소불위의 존재, 동시에 여러 화신이 될 수 있었으니 그 관성이 오죽 했으리라. 그 특성은 ‘사이다’라는 말로 대변 되듯 혁신적이고 강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부작용도 낳았다. 사회가 성숙하고 국민 평균소양이 상향되면 발붙일 곳이 없을만한 속성이 몇 년간 작동하였다.
그러나 그 세계관을 조금만 벗어나 객관화된 제도하에서 이는 자충수가 될 수밖에 없다. 자신의 꾀가 자기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적절히 절제하면 더욱 완전범죄가 될 수 있었던 여러 상황에서 그는 하지 않아도 될 말과 행동을 덧붙이는 습성을 보여왔다. 그의 세계관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못된 버릇인 것이다. 실제 그는 후보자 토론 등 공적 자리에서 타격을 입으면 자신에게 편향된 팟캐스트 등에 가서 이를 만회하려는 행보를 보였다. 자기 주장에 '아멘,아멘' 하는 사람들의 신념을 강화 시키려는 의도도 작동 했으리라. 국토부가 직무유기 들먹이며 협박 했다거나, 김문기와 같이 찍은 사진이 조작 됐다거나 하는 사족을 붙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이러니하게 결국 이것이 유무죄를 가른 것이다. 이런 사족이 없었다면 재판부는 법과 정의 사이에 상당한 고민을 했을 것이고, 그 결론이 다수의 상식에 부합한다는 보장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재명을 무너뜨리는 것은 이재명 본인인 것이다.
결국 재판부는 인지의 문제를 사실(행동)에 대한 거짓말에 해당하는지 고민하는 수고를 할 필요 없이 ‘김문기와 골프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거짓말을 인정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김문기 몰랐다’는 주장에 대한 판단과, 선거에 영향을 미칠 의도가 있다는 범죄고의까지 무난하게 인정하였다. 일부무죄로 평가된 부분은 무죄로서의 의미가 전혀 없이 이에 흡수되었다.
양형으로 말한다
형사판결의 양형에 대해 자칫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양형의 계산은 일반 산술식과 달리 ‘1+1 = 1.5’, ‘2-1 = 2’ ‘4-2 = 4.5’가 될 수 있다. 4개의 주장혐의 중 3개에 일부무죄가 되었다 하여 양형이 1/4이 되는 것이 아니다. 경합범의 처리방법과 피고인의 태도 및 재범가능성, 죄질 등 여러 양형요소를 통해 재판부가 가지는 재량, 법정형에 있어 선택형과 각 처단형의 범위 설정 등 양형은 매우 복잡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김변이 일식을 즐기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4개의 근거가 있을 때, 3개는 약하지만 1개의 강력한 근거가 있다면 ‘김변은 일식을 즐기지 않는다’는 결론을 무난히 낼수 있다. 3개의 약한 근거가 배척 되었다고 ‘김변은 일식을 1/4만큼 즐기지 않아’라는 부분결론을 내지 않는 것과 같다. 재판부 판결의 취지는 ‘이재명이 대통령선거에서 유권자에게 혼동을 주기 위해 김문기와 연관성이 없다고 거짓말 하였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무죄 부분은 양형에 전혀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의 효과를 낳았다.
재판부는 선택형에 있어 벌금형이 아닌 자유형을 선택하였다. 죄질이 나쁘다고 본 것이다. 재판 내내 범행을 부인하고 궤변으로 일관했다. 그 노력(?)의 결과 인식에 해당하는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무죄를 받았으나, 그 무죄를 받는 과정에서 보인 태도는 일부 인정된 혐의에 대한 가중사유로 작용 했다. 오히려 나머지 혐의도 모두 인정하고 선처를 바랐다면 무죄부분이 유죄가 되더라도 양형에서는 벌금형 선택도 가능했을 것이다. 낙선한 후보자임에도 공선법 혐의에 대해 벌금형이 아닌 자유형을 받은 것은 이재명의 자업자득이다.
난 이재명 피고인이 자신의 사욕을 위해 고 김문기씨를 부인했던 행동을 보며 특히 괴로웠었다. 고인의 발인날 산타복을 입고 춤추던 그 부부의 모습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무엇보다 이 사건에서 유죄를 희망했다. 그것이 순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일부무죄지만 이재명의 고인에 대한 거짓말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고, 무죄로 아쉬운 부분은 오히려 양형으로 보정 되었다는 점에서 사실상 전부유죄와 같은 가치를 갖는다.
검사도 항소해야
피고인은 항소 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의 세계관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속내는 매우 복잡할 것이다.
집행유예가 확정되는 경우 피선거권이 10년간 박탈된다. 항소심과 상고심을 대선 이후까지 끌고 가지 못해, 그 전에 판결이 확정된다면 그와 이익공동체의 유일한 희망이 사라진다. 1심이 온갖 잡기로 장기간 진행된 결과 중복된 증거신청을 받지 않는 항소심이나 증거조사를 하지 않는 상고심을 마냥 지연시킬만한 핑계도 없다. ‘인지의 허위’는 허위사실공표가 될 수 없다는 법리적 주장은 법원이 받아 들였다. 때문에 법리오해라는 핵심적 항소이유는 공허해졌다. 양형부당도 유죄를 전제하므로 대놓고 항소이유로 삼기 껄끄럽다. 양형에 대해 하급심을 존중하는 원칙상 중대한 사실오인이 없는 이상 감형의 가능성도 낮다. 일부감형이 된다 하더라도 당선무효형(100만원 미만)과 이 판결 선고형의 차이는 너무나 크다. 본인이 거짓말 했다는 사실은 그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알고 있다. 감형의 동력으로 삼을만한 팩트나 명분이 없다. 또한 이어서 진행되는 다른 재판들이 연속적으로 매듭지어질 것이다. 댐에 균열이 생겨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에만 매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러모로 극단의 상황에 내몰린 형국이다.
사실상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취지로 판결 되었지만 검사도 항소해야 한다고 본다. 항소심에서는 이른바 ‘불이익 변경 금지’ 원칙이 적용되어 피고인만 항소하는 경우 감형여부만 판단하는 재판이 된다. 불이익이 없기 때문에 각종 무리한 변론도 가능하다. 쌍방항소의 경우 재판부는 양쪽 항소를 모두 기각하여 균형을 잡는 심리가 어느 정도 작동할 수 있다. 양형이 올라갈 가능성을 열어 두기 때문에 피고인이 마냥 무리한 변론을 할 수 없는 억제효과도 있다. 더군다나 이재명이란 인간의 특성을 볼 때 마냥 고삐를 풀어주는 것은 억제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검사도 피고인의 항소에 맞서 같이 항소하기를 희망한다.
다행히(?) 일부무죄로 인해 검사의 항소가 가능한 상황이다. 만약 재판부가 무리한 논리로 전부유죄를 선고 했더라면 피고인의 항소범위는 넓어지고 검사의 항소는 차단 되었을 것이다. 불이익변경금지의 우산 아래 폭주하는 칼춤을 추었을 것이다. 실질적 전부유죄이나 형식적 일부무죄인 이 상황이 참 절묘하다.
이제 순리를 향하여
큰 의미가 있는 사건에서 이재명 피고인은 완패하였다. 그러나 아직 이는 신호탄에 불과하다. 자신의 세계관 속에서 혹세무민하며 누려 왔던 대가를 이제 치러야 할 때다. 나아가 이 사회에 미친 부작용들과 깨지고 하향평준화 된 가치들을 점차 회복할 때다. 순차적으로 여러 재판에서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고,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세계관을 도구로 이를 회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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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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