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2026. 5. 31.
DJ와 플라톤의 경고, 누구를 위한 지방선거인가
김대중 대통령의 단식으로 이뤄낸 '풀뿌리민주주의' 31년, 우리는 어디에?
부실한 검증 토론과 비효율적 종이 공보물, 이대로는 안된다
유독 함량미달 후보자가 많은 이번 선거, 걸러내는 것도 선거의 기능이다
"지방자치는 국민에 대한 민주주의의 학교이며 정치 엘리트의 발굴처입니다.” - 김대중 대통령
1990년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 대통령은 노태우 대통령의 3당 합당으로 거대 여당이 된 민주자유당이 개헌선을 넘어 국회 의석의 절대다수를 차지하자 정권이 독재로 갈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강하게 느꼈다. 여당의 독주와 민주주의 파괴를 막을 길은 ‘풀뿌리 민주주의’ 라는 결론을 내린 그는 총재직을 사임하고 ‘지자체 선거 전면실시’를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다. 그의 나이 66세 때의 일이었다. 단식 13일 만에 김대중이 병원으로 이송되자 여론이 움직였고 여당도 백기를 들었다. 실시 31주년, 횟수로는 9회 째를 맞는 전국동시지방선거는 김대중의 목숨을 건 저항의 결과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말처럼 지방선거는 유권자를 위한 '민주주의 학교’이며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한 ‘지역 정치 엘리트’를 뽑는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엘리트'는 커녕 전과자가 수두룩하다. 음주운전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태도에 특수폭행, 사기 전과가 있어도 후보로 나서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유권자의 알권리 보장도 막막하다. 사전투표일 전날 자정이 다 되어서야 간신히 열리는 단 한 번의 토론회, 그리고 대다수 가정에서 훑어보지도 않은 채 아파트 폐지함으로 직행하는 종이 공보물이 오늘날 지방선거의 민낯이다. 후보자의 정책과 인물, 경력을 제대로 검증할 시간도, 정보도 주어지지 않는 답답한 구조 속에서 선거는 점차 그 본연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후보자 토론회의 부실화와 형식화다. 자정이 다 된 심야 시간에 한두 시간 진행되는 토론으로 유권자가 도대체 무엇을 알 수 있겠는가. 이는 서울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도 별반 다르지 않다. 토론회가 유권자들에게 외면받고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하자, 이번 선거에서는 유독 준비되지 않은 함량 미달의 후보들이 뻔뻔하게 활개를 치고 있다. 자기가 내건 공약의 내용이나 그것이 적용되는 지역의 위치, 지명조차 제대로 모른 채 토론장에 나서고 어떤 후보는 자기가 사는 집 주소조차 모른 채 지자체장이 되겠다고 한다. 이들은 상대 후보의 정당한 정책 검증과 자질 공세에 논리적인 반박 대신 "프레임 짜지 마라", "네거티브다", "검사 취조실이냐" 같은 앵무새 같은 말만 반복한다. 자신의 무지에 대한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없이, 특정 정당 기호 마크와 지지율 높은 대통령 후광만으로 당선될 수 있다는 식의 객기는 유권자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법정 선거 토론회를 대폭 늘리고 실효성을 확보하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미디어 환경이 변해 TV 시청률이 예전만 못하다고 하지만, ‘전파의 공공성’은 바로 이런 순간에 가치를 발휘해야 한다. 후보자 토론회는 지상파 2개 채널 이상에서 동시에 라이브로 중계하고, 방송 시간대 역시 퇴근 후 접근하기 좋은 초저녁 시간대로 과감히 당겨야 한다. 방송 이후에는 유튜브나 대형 플랫폼을 통해 상시 다시보기를 제공하고, 언론사 유튜브 채널과의 협업을 적극 활용해 다각적인 정책 검증의 장을 상시 열어두어야 한다.

선거 공보물 제도 역시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수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슬로건을 짜고 디자인과 인쇄 감리를 거쳐 제작된 종이 공보물이 배달되자마자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현실은 극심한 자원 낭비이자 환경 오염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종이 공보물을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디지털 취약계층이나 온라인 소외층에게는 여전히 우편 공보물이 유일한 정보 통로이며, 후보자의 전과 기록 등이 투명하게 확인되는 최소한의 상식적 기준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면서도 온라인 소외층을 배려하고 자원을 아끼기 위해서는 유권자가 종이와 전자 공보물 중 원하는 방식을 선택하여 수령하도록 제도를 바꾸거나, 주민센터 등 공공시설에 비치하여 필요한 사람만 가져가게 관리하는 등의 전환적 묘수를 찾아야 한다.
원하는 후보를 지지하고, 그를 뽑는 것만이 선거의 전부가 아니다. 명백하게 자질 없는 이들을 탈락시키는 것 또한 선거의 핵심 기능이다. 한 편으로는 정보가 과잉되지만 정작 제대로 알아야할 것들은 가려지는 시대다. 검증의 무대를 넓히는 법적 보완과 함께 무지한 후보를 투표로 심판하겠다는 유권자의 서슬 퍼런 감시 의식이 강화되어야 한다.
“정치무관심의 대가는 최악의 저질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어제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의 에스엔에스에 인용한 플라톤의 유명한 격언이다. 심야의 부실토론과 버려지는 공보물이라는 낡은 관행을 깨고, 무지하고 뻔뻔한 이들에게 속지 않겠다는 유권자의 의식이 바로 설 때, 우리는 적어도 부끄럽지 않은, 도덕성과 자질을 갖춘 지역 리더를 세울 수 있지 않을까?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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