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2026. 8. 17.

누구를 위하여 서울시 공공임대는 존재하는가

2007년 시작된 서울시 장기전세의 20년 만기 도래를 둘러싼 갈등

못 나간다는 입주자들, 공공재와 정책의 원칙은 어떠해야 할까

서울에서 못 살면 망한다는 생각, 근본적인 과제는 서울중심주의 해체

서울시 장기전세주택 ‘시프트(SHift)’가 최근 20년 만기를 앞두고 논란에 휩싸였다.

2007년 시작된 ‘시프트’는 무주택 시민에게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보증금으로 장기간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되 최장 거주기간은 20년이었다. 그 첫 만기가 내년부터 시작된다. 2027년 310가구가 입주한 것을 시작으로 2031년까지 무려 9,361가구가 20년의 임대기간을 채우게 된다. 

그런데 최근 일부 입주민들이 계약 연장과 분양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20년 사이 서울 집값과 전셋값이 너무 올라 이제 나가면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 전경(사진: 서울시)
서울시 전경(사진: 서울시)

1억원으로 들어간 집, 지금 전세가는 7억원

2007년 서울시가 처음 시프트를 공급했을 때 송파구 장지10단지 전용 59㎡의 전세보증금은 1억545만원이었다. 강서구 발산2단지는 8,080만원이었다. 당시에도 파격적인 가격이었다. 장지지구는 주변 전세시세의 약 67%, 발산지구는 불과 52% 수준이었다. 2008년 은평뉴타운에 공급된 시프트 역시 전용 59㎡가 9,799만원, 84㎡가 1억2,630만원이었다.


지금은 어떨까? 최초 시프트가 공급됐던 송파파인타운10단지 전용 59㎡의 2026년 일반 전세 실거래가는 6억~7억원대다. 올해 6월에는 7억5,000만원, 7월에도 7억4,000만원에 거래됐다. 84㎡ 규모의 송파파인타운11단지는 최근 전세 실거래가가 8억원, 9억원에 이른다. 물론 이를 두고 입주자가 ‘6억원을 벌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보증금 차액 자체가 소득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지난 20년 동안 일반 무주택자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던 서울의 급격한 주거비 상승 위험으로부터 시프트 입주자는 상당 부분 보호받았다. 그것이 바로 시프트라는 제도가 제공한 엄청난 혜택이었다.


그렇다면, 지난 20년 동안 시프트에 당첨되지 못한 서울 시민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전셋값이 2억원에서 3억원, 5억원, 7억원으로 올라갈 때마다 돈을 더 마련했다. 대출을 받았다. 집의 크기를 줄였다. 서울 외곽으로 옮겼다. 경기도나 인천으로 밀려난 사람도 있다. 집을 사기 위해 소비를 줄이고 저축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프트 입주자는 그와 다른 길을 걸었다. 공공의 지원을 통해 20년 가까이 주거비 상승의 충격을 상당 부분 피하면서 안정적으로 서울에서 살 수 있었다. 그것이 시프트를 만든 이유였고, 좋은 공공정책의 성과였다. 그러나 서울시의 정책에는 처음부터 ‘20년’ 이라는 종료시점이 있었다.


그 20년 동안 시프트 입주자들이 반드시 집을 샀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질병이 있었을 수도 있고 가족을 부양했을 수도 있으며 충분한 소득을 얻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20년 뒤 계약이 종료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이후 어디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 준비해야 할 일차적인 책임까지 서울시에 넘길 수는 없는 것이다. 


SBS뉴스와 인터뷰 한 입주자 위원회 위원장. (사진:SBS뉴스 유튜브)
SBS뉴스와 인터뷰 한 입주자 위원회 위원장. (사진:SBS뉴스 유튜브)

20년이 부족하다면 몇 년이어야 하는가

최근 시프트 만기 논란을 다룬 뉴스에 출연한 한 주민은 ‘우리도 실질적인 피해자’ 라고 주장했다. 20년이 됐다고 나가라고 하는 것은 원론적으로는 맞지만 결과적으로는 부당하다는 주장을 폈다. ‘20년’ 도 부족하다면 도대체 몇 년이어야 충분할까? 25년인가. 30년인가. 아니면 평생인가.


“처음 입주했을 때는 젊었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 경제력이 없으니 나갈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40~50대에 입주한 사람이 20년 뒤 60~70대가 되는 것은 처음부터 예상 가능한 일이다. 고령이라는 이유만으로 계약을 다시 연장한다면 ‘최장 20년’이라는 정책의 규정은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게다가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공공주택에는 다음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존 입주자가 계속 거주한다는 것은 서울시가 단순히 조금 더 선의를 베푸는 문제가 아니다. 그 집에 들어갈 수 있었던 또 다른 무주택 시민 한 가구가 기회를 잃는다는 뜻이다.


같은 나이의 두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A는 20년 전 시프트에 당첨됐다. 1억원 안팎의 보증금으로 서울에서 안정적으로 살았다. B는 떨어졌다. B 역시 무주택자였다. 하지만 전셋값이 오를 때마다 돈을 마련해야 했다. 결국 서울의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해 경기도로 이사했을 수도 있다. 20년이 흘러 두 사람 모두 70세가 됐다. 그런데 A가 “나는 늙었고 서울 전셋값이 너무 올랐으니 계속 이 집에서 살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렇다면 B에게는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B 역시 늙었고 역시 경제력이 부족할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B는 지난 20년 동안 공공주택의 혜택조차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제 막 결혼해 서울에서 살 집을 찾는 젊은 무주택 가구 C가 있다. 공공주택 정책은 A의 사정만 봐줄 수 없다. A와 B와 C의 권리를 함께 봐야 한다. 공공주택은 특정 입주자의 재산도 아니다. 필요한 시민에게 순환되어야 하는 사회적 자산이다.


2007년 정책 시행 초기 서울시 장기전세주택 신청 모습. (사진: 연합뉴스)
2007년 정책 시행 초기 서울시 장기전세주택 신청 모습. (사진: 연합뉴스)

같은 뉴스에서 한 입주자가 “늙은 사람들은 시골 가서 다 죽으라는 거냐”는 취지로 항변하는 것을 보았다. 그 심정은 이해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전형적인 논점의 비약이다. 서울시가 ‘노인은 서울에서 살면 안 된다’ 고 한 것이 아니다. 계약서에 정해진 20년의 임대기간이 끝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계약기간이 종료됐다’는 말을 ‘노인은 서울을 떠나 시골에서 죽으라는 것이냐’로 바꾸어 공격하면 합리적인 정책 논의는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에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더 큰, 더 고질적인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왜 ‘지방으로 이주한다’는 개념이 곧 ‘버려진다’는 의미처럼 받아들여지는가 하는 것이다.  왜 우리 모두는 서울을 떠나는 것을 우리는 이토록 두려워하는가.


서울 밖에서는 제대로 살 수 없다는 공포

한국인의 유별난 ‘서울 최고주의’는 개인의 취향이나 허영심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서울은 모든 인프라가 압축된 대한민국의 중심이다. 일자리와 교육은 물론이고 대형병원과 전문의료, 대중교통, 공연장과 미술관, 쇼핑과 문화시설까지 서울과 수도권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 그렇기에 서울은 대한민국 모든 세대와 직군을 빨아들여 날로 비대해져 왔다. 


특히 고령자가 될수록 의료 시설의 접근성 문제는 크게 다가온다. 가까운 곳에서 전문의를 만나고, 큰 병이 생겼을 때 수준 높은 병원에 쉽게 갈 수 있다는 것은 삶의 질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일이다. 따라서 서울 집값을 감당 못하겠다는 은퇴자들에게 “지방으로 가서 유유자적 살면 되지 않느냐”고 하기는 어렵다. 집 값만 싸다고 사람이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싼 주택에서 '제대로' 살 수 있어야 지방으로 움직인다. 그렇다고 해서 정반대의 결론, 즉 “지방의 인프라가 부족하므로 원하는 사람 모두에게 서울 거주를 공공재정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갈 수도 없다. 서울은 한정되어 있고 살고 싶은 사람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장기전세주택 입주자의 하소연(사진:KBS 뉴스)
장기전세주택 입주자의 하소연(사진:KBS 뉴스)

국가는 시민의 주거권을 보호해야 한다. 특히 경제적으로 취약한 고령자가 갑자기 집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 하지만 주거권과 ‘내가 원하는 서울의 특정 지역, 지금 살고 있는 특정 아파트에서 계속 살 권리’는 같은 것이 아니다. 서울에서 살고 싶은 이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직장이 서울에 있는 청년도 있고, 아이 교육 때문에 서울에 살고 싶은 부모도 있다. 대학병원을 이용해야 하는 노인도 있고 문화생활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 그 모두가 정당한 욕구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극도로 희소한 서울의 공공주택을 특정 가구가 무기한 점유할 수는 없다.


해법은 무엇일까? 

첫째, 20년이라는 계약기간은 원칙대로 지켜야 한다. 분양전환도 안 된다. 애초 분양전환을 전제로 공급한 주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만기 입주자의 현재 소득과 자산을 다시 심사해야 한다. 충분한 자산과 소득이 있다면 일반 주택시장으로 이동해야 한다. 서울의 현재 주거비가 부담스럽다면 더 작은 주택이나 서울 외곽, 수도권 등 경제력에 맞는 주거지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대안이 '선택' 으로 고려될 수 있으려면 서울 외 지역의 인프라가 대폭 달라져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셋째, 정말 경제력이 없는 고령자와 주거취약계층에게는 대안을 제공해야 한다. 현재의 주거 수준을 완벽히 충족할 수는 없다 해도 다른 유형의 공공임대주택, 고령자 맞춤형 임대주택, 주거급여 등 기존 주거복지제도와 적극 연결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원칙은 하나다. ‘시프트에서 계속 살 권리’와 ‘주거취약계층을 보호받을 권리’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주거취약계층은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지난 20년 동안 살았던 바로 그 아파트에서 계속 살아야 한다는 권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번 시프트 논란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대한민국은 ‘어디에 사느냐’가, 다른 무엇보다 삶의 질을 지나치게 크게 결정한다는 것이다. 서울의 집값을 잡겠다면서 일자리와 대학과 병원과 문화시설을 계속 서울에 몰아넣으면 주택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공급을 늘려 집값을 잡겠다며 용산공원 등 새로 확보되는 서울의 금싸라기 땅을 개발해 공공임대를 만든다 해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에게 지방으로 가라고 말하기 전에 지방에서도 좋은 삶을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특히 지역 거점도시의 의료 인프라에 과감한 국가적 투자가 필요하다. 모든 시·군에 서울과 똑같은 시설을 만들자는 비현실적인 균형발전이 아니다. 부산·대구·광주·대전 등 주요 거점도시와 권역별 중심도시에 수준 높은 대학병원과 전문의료, 대중교통과 문화시설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서울에 가지 않아도 일상생활의 핵심적인 필요를 고루 충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좋은 공연과 전시를 보기 위해 반드시 서울에 와야 하는 나라, 좋은 의사를 만나기 위해 서울의 ‘빅5’ 병원을 찾아야 안심되는 나라를 그대로 두고 조세든 공급이든 부동산에 따르는 정책만으로 수도권 집중을 해결하기는 어렵다. 종종 국도를 달리다 보면 아무 인프라가 없는 허허벌판에 고층 아파트 몇 동이 덩그러니 있는 곳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런 식으로 지어놓고 “몇 만 호를 공급했다”,  “집값이 싸니 내려가 살라”고 해서는 사람이 가지 않는다. 집이 아니라 삶의 인프라를 분산해야 한다.



서울의 야경. (사진: 서울시)
서울의 야경. (사진: 서울시)

서울이 아니어도 살만한, 서울이 아닌데도 괜찮은  

시프트는 결코 실패한 정책이 아니다. 오히려 한 가구가 최대 20년 동안 주거비 걱정을 크게 덜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했다면 성공적인 주거정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정책이 완결성 있게 마무리 되려면 종료 시점에 대한 약속, 공공재를 다루는 원칙 역시 분명해야 한다. 한번 혜택을 받은 사람이 그 혜택을 계속 보유한다면 공공주택이라는 자원은 순환하지 않고 새롭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복지의 선의가 특정인들에게만 주어지는 영구적인 권리로 굳어진다면 또 다른 불공정이 생긴다. 20년 동안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과 평생 같은 집에서 살도록 보장하는 것은 전혀 다른 정책이다. 20년의 계약이 끝났다면 원칙대로 종료해야 한다.


그 뒤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현재의 형편을 기준으로 다시 보호하면 된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장기적으로 해야 할 일은 서울의 공공주택 한 채를 놓고 세대가 싸우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서울을 떠나는 것이 가정의 몰락이나 삶의 추락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서울이 아니어도 괜찮은 나라.”


이번 시프트 논쟁에서 우리가 정말 고민해야 할 것은 어쩌면 그것인지 모른다.



누구를 위하여 서울시 공공임대는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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