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2026. 8. 22.
센트럴파크에서 용산공원을 생각하다
뉴욕 맨하탄, 센트럴파크를 보고 든 생각들
민주, 국힘 정권에서 모두 추진됐던 용산공원 프로젝트는 왜 흔들리는가
천만 도시에 무엇을 짓지 않을지에 대한 결정이 필요하다

대도시 여행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방문하는 곳은 '전망대'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면 그 곳이 어떤 곳인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대략의 감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뉴욕시티 여행 첫 날에 방문했던 록펠러센터의 전망대 ‘탑 오브 더 락’ 이 그렇다. 70층 260미터 상공에서 내려다 보는 맨하탄의 광경은 압도적이다. 모든 문명과 부유함, 명성과 기술이 집약된 뉴욕 시티의 중심. 세계적인 대기업과 유명인들이 사는 호화로운 아파트가 즐비한 건물들 사이에 약 341만㎡의 거대한 공원인 센트럴파크가 있다.
센트럴파크는 이름 그대로 뉴욕 중의 뉴욕인 맨해튼의 ‘중심’이라 세계에서 가장 비싼 땅 가운데 하나지만 거기엔 아파트나 쇼핑몰 등 어떤 생산 시설도 없다. 들판과 연못, 숲이 있을 뿐이다. 경제성만 따지면 매우 비합리적인 입지다. 국토가 작은 나라에서 온 관광객으로서는 공원의 장관에 감탄하면서도 이런 생각이 든다.
‘저 땅을 개발하면 아파트를 몇 채나 지을 수 있을까?
기업이 들어오면 몇 명을 고용하고 얼마를 벌 수 있을까.’
하지만 뉴욕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런던도 마찬가지다. 하이드파크와 켄싱턴가든 같은 거대한 녹지가 도심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적인 대도시들의 중심에는 왜 공원이 있을까? 이미 선진국이라 경제발전이 필요치 않거나 땅이 남아돌아서? 아니다. 도시의 삶의 질, 품격 때문이다. 가장 비싼 땅조차 개발하지 않고 시민 모두의 공간으로 남겨둘 수 있어야 살기 좋은 도시가 되기 때문이다. 서울에도 얼마든지 그런 공간이 생길 수 있다. 바로 ‘용산공원’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이어졌던 ‘용산공원’ 프로젝트
용산기지는 100년 넘게 일본군과 미군이 사용했다. 서울 한복판에 있으면서 정작 서울시민은 들어갈 수 없었던 땅이다. 2000년 대에 한미간 기지 이전 협의가 진행됐고 문재인정부 시절인 2020년에 국가공원 조성을 위한 부지 반환이 본격화 됐다. 2022년 8월 까지 용산기지 243만 제곱미터 중 31.4%가 반환됐다. 바뀐 정권에서도 용산 공원화 정책은 이어져 윤석열 정부도 반환 부지 일부를 ‘용산어린이정원’으로 개방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같은 입장이었다. 2022년 대선 당시 그는 용산공원을 “뉴욕 센트럴파크에 버금가는 자연 속 휴식과 문화의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그랬던 이재명 정부에서 갑자기 용산공원 주택 공급론이 나왔다.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처음에는 “용산공원 전체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이 발언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서울시가 반대하자 금새 설명이 달라졌다. ‘공원 전체를 개발하는 것은 아니며 공원 기능을 하기 어려운 일부 공간의 활용 가능성을 검토한다’ 고 말이다.
용산공원은 어제 갑자기 발견된 빈 땅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반환과 공원화를 준비해온 국가적 프로젝트다. 토양오염 정화가 필요하고 아직 반환되지 않은 시설도 있다. 국가공원 본체와 별도로 개발을 전제로 한 복합시설조성지구도 이미 존재한다. 그런데 최근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갑자기 용산공원이 주택 부지 후보지로 등장했다.

갑자기 용산을 건드리는 이유
그런데 아무리 봐도 도시계획과 주택 정책을 고민하는 순서가 영 거꾸로다. 정말 주택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수십년간 공원화가 추진 중인 곳을 건드리기 전에 재개발·재건축, 역세권 고밀개발, 노후 주거지역 정비와 기존 공공부지 활용부터 검토하는 것이 먼저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새로운 부지를 찾아야 한다. 정부는 아직 용산공원에서 몇 가구를 공급할 수 있는지, 토양 정화와 법적 절차에 얼마나 걸리는지, 어떤 공원 기능을 포기해야 하는지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그냥 툭 던지듯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겠다”고 장관이 말하는 것은 정책이 아니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비난과 대통령 지지율 하락이라는 ‘급한 불’을 끄려는 정치 메시지에 가깝다.
더구나 정부·여당의 공격은 용산공원 개발에 반대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집중되고 있다. “정부는 공급하려고 애쓰는데 서울시(오세훈) 이 막는다” 는 논리다. 부동산 정책의 성과가 부족한 것은 정부가 해결할 문제지만, 지금 공급이 막힌 것은 '서울시 때문’이라니. 언뜻 보면 그럴 듯한 알리바이지만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전가’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서울은 숨쉴 곳이 ‘더’ 필요하다
공원은 시민의 휴식 공간이자 도시의 허파다. 폭염을 완화하고 아이들이 뛰고 노인들이 걷는 곳이다. 쇼핑몰과 유료시설, 기업 건물들이 즐비한 도시에서 공원은 돈을 내지 않아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가장 평등한 도시 공간의 기능을 한다. 천만에 가까운 인구가 초 밀집한 서울에는 이런 공간이 절실하다.
‘서울에는 북한산과 관악산, 남산이 있지 않느냐’ 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산과 평지형 도심공원은 그 역할이 다르다. 뉴욕이 도시 외곽에 자연이 없어서 센트럴파크를 지키는 것도 아니고, 런던이 교외 녹지가 부족해서 하이드파크를 남겨놓은 것도 아니다. 도심 한 가운데에 존재해야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센트럴파크를 만들고 유지할 때도 반대의 목소리는 있었다. 뉴욕이 팽창하면서 주택이 부족한데 중심지의 거대한 땅을 그냥 놀리는게 옳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센트럴파크 계획에 참여한 조경가 프레데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 는 "지금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100년 후에 이만한 규모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다" 라고 반박했다.
용산공원의 가치 또한 도심 한 복판의 거대한 공원이라는 대체 불가능성에 있다. 남산과 한강 사이, 서울의 중심에 수백만㎡ 규모의 녹지축을 만들 기회는 다시 오기 어렵다. 아파트는 다른 곳에도 지을 수 있지만 용산공원과 같은 위치와 면적에 녹지를 확보할 수 있는 땅은 다시 없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정책의 신뢰’다
몇 년 전 용산을 센트럴파크에 버금가는 공원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던 정치인이 대통령이 됐다. 그런데 부동산 문제가 어려워지고 지지율이 하락하니 그 공원의 일부를 주택 후보지로 검토한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식이라면 국민은 정부의 장기 계획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 오늘은 집이 부족하니 공원을 줄이고, 내일은 세수가 부족하니 공공시설을 팔고, 모레는 개발 수요가 있으니 녹지를 없애는 식이라면 애초에 도시계획이라는 건 존재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정부가 정말 용산공원의 일부를 개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면 무엇부터 했어야 할까? 먼저 숫자를 내놓아야 한다. 정확한 위치와 면적, 예상 공급량, 정화 기간과 비용, 법적 문제, 공원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왜 재개발·재건축과 기존 도심 공급보다 용산공원을 먼저 개발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설득할 일이다. 그 모든 과정 없이 ‘용산공원도 고려 중’, '전체 녹지 훼손하겠다는 것 아니다' 같은 카드를 던지고 여론이 안 좋아지면 '아이디어 차원' 이라며 서울시장을 공격한다면 실패한 정책에 대한 책임 돌리기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서울에 무엇을 짓고, 또 짓지 않을 것인가
서울에는 당연히 아파트가 필요하다. 정확하게는 시민들이 안정되게 살 수 있는 다양한 가격대와 입지의 주거공간이 필요하다. 아파트만 필요한 것도 아니다. 많은 이들이 뉴욕을 선망하는 것은 화려한 마천루와 함께 센트럴파크가 있기 때문이다. 문명과 경제가 자연과 어울려 숨쉴 때 생명력을 얻고 멋진 도시라는 평판을 얻을 수 있다. 런던이나 파리도 마찬가지다. 선진국의 이름 난 도시들은 오래된 유적이나 현대적인 건축 디자인 만으로 유명해진 것이 아니다. 개발과 전쟁의 와중에도 도심 한복판의 거대한 공원을 지켜온 일관된 선택이 오늘의 런던과 파리를 만들었다.
당장의 공급 실적을 위해, 정권의 지지율을 위해, 백 년 뒤 서울이 누릴 공간을 잘라내는 것은 쉬운 정치다. 어려운 정치는 지금의 주택 문제를 해결하면서 미래 세대의 숨 쉴 공간을 남겨 놓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도시는 무엇을 얼마나 많이 짓느냐 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당면한 여러 유혹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끝내 짓지 않을 것인가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을 때, 서울은 비로소 대대로 살기 좋은 도시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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