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2026. 9. 15.

용혜인 사퇴가 남긴 것들

진보, 민주당 지지자들도 반대한 용혜인 장관 지명

그의 사퇴가 남긴 질문들은 우리 정치의 가장 처참한 모순

용혜인 사퇴가 남긴 것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결국 사퇴했다. 지명 14일 만이다. 사퇴 자체는 늦었지만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한 여론조사에서 용 후보자의 임명을 반대한다는 응답은 73.4%에 달했다. 보수층만의 반대도 아니었다. 중도층은 물론 진보층에서도 반대가 우세했고, 심지어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절반 이상이 임명에 반대했다.


이 정도라면 정치인이 먼저 성찰해야 할 것은 간단하다. ‘왜 이렇게 많은 국민이 나를 부적격이라고 판단했는가.’ 그러나 용혜인의 마지막 메시지는 그 질문과도 비껴갔다. 그는 자신을 지명한 대통령에게 “소임을 다하지 못해 송구하다”고 했다. 동시에 민주당으로부터 “결단해 달라”는 의사를 전달받았다는 사실을 굳이 공개했다. 며칠 전까지 자신에게 “떳떳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했던 태도 역시 근본적으로 거두지 않았다.


결국 국민의 압도적인 반대 여론 앞에서 자신의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설명하기보다, 자신을 선택한 대통령에게 미안해하고 자신에게 사퇴를 요구한 민주당을 지목했다. 이 장면은 어쩌면 이번 사태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준다. 요즘의 한국정치, 주류 여당(용의원은 스스로 '야당의원'이라고도 하지만) 의 정치가 국민을 향하지 않고 정치권 내부만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남긴 문제는 용혜인 개인의 자질이나 비례대표 의원의 장관 겸직 여부보다 훨씬 크다. 용혜인이라는 정치인이 국회에 들어온 과정부터 장관 후보자가 되고 다시 물러나는 과정까지 들여다보면, 지금 한국 정치가 안고 있는 여러 모순이 한꺼번에 드러난다.


첫 번째는 위성정당 정치다.

용혜인은 두 번의 총선에서 모두 민주당이 주도한 비례연합정당을 통해 국회에 들어왔다. 21대 총선에서는 더불어시민당, 22대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로 당선된 뒤 다시 기본소득당으로 돌아갔다.

법적으로 가능한 절차였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국민이 그것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점이다. 정치적 실질의 문제다. 비례대표제의 본래 취지는 거대 양당이 포괄하지 못하는 다양한 정치적 목소리를 국회에 진입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거대 정당의 비례 플랫폼에 들어가 당선권을 배정받은 뒤 다시 자기 당으로 돌아가는 방식이 반복됐다. 이것을 다당제의 성과라고 부를 수 있을까.

독자적으로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 의석을 얻기 어려운 소수정당이 거대 정당의 정치적 필요와 결합해 의석을 확보하고, 다시 그 의석을 토대로 독립정당의 대표성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다당제라기보다 거대 정당에 의존하는 위성정치에 가깝다.


두 번째는 장관직의 정치적 배분이다.

장관직은 연합정치를 장식하기 위한 훈장이나 포상이 아니다. 특히 성평등가족부 장관이라면 여성정책과 가족정책, 노동시장과 돌봄, 성폭력과 젠더 갈등 등 복잡한 문제를 다룰 전문성과 행정 역량이 요구된다.

그런데 이번 인사를 둘러싸고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된 것은 ‘왜 용혜인이 이 부처의 장관이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연합정치의 상징’이라는 정치적 의미였다. 장관직이 전문성과 행정 능력보다 정파 간 몫 배분의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 국무위원이라는 자리의 무게 자체가 가벼워진다.

연합정치도 탕평도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적임자라는 전제 위에서 가능한 이야기다. 자리를 먼저 나누고 그 뒤에 명분을 붙이는 순간 연합정치는 협치가 아니라 논공행상이 된다.


세 번째 모순은 더욱 기묘하다.

용혜인이 사퇴한 바로 다음 날 기본소득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가리지 않고 국회의원과 국무위원의 겸직을 금지하는 법 개정을 제안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용혜인 후보자는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은 현행법이 허용하고 있다며 자신이 의원직과 장관직을 동시에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랬던 정당이 후보자가 낙마하자 이제는 아예 모든 의원의 장관 겸직을 금지하자고 한다. 법을 어긴 것이 아니니 자신에게는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자신이 그 자리를 가질 수 없게 되자 제도 자체를 없애자고 하는 모습이다. 처참한 모순이다. 물론 어떤 사건을 겪은 뒤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깨달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자신의 기존 판단이 무엇이었고 왜 그것을 바꾸게 됐는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그것이 책임정치 아닌가? 그러지 않은 채 곧바로 법 개정을 들고나오는 것은 원칙의 정치라기보다 정치적 패배를 제도 논쟁으로 전환하려는 모습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용혜인은 자신을 청년과 여성, 소수정당과 새로운 정치의 상징으로 설명해왔다.

그러나 정치적 성장의 실제 경로를 보면 역설적이다. 그는 기성 정치의 높은 벽을 스스로 뚫고 올라왔다기보다 두 차례에 걸쳐 거대 정당이 만든 비례연합정당이라는 예외적 통로를 활용했다. 그 결과 국회의원이 됐고 재선에 성공했으며, 마침내 장관 후보자로까지 지명됐다. 기성정치의 혜택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자신을 기성정치의 대안이라고 말하는 것. 거대 정당과의 연합을 통해 정치적 생존을 확보하면서 그것을 다당제의 성취라고 주장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청년과 여성이라는 대표성을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으로 내세우는 것. 이 지점에서 많은 청년, 그리고 여성들이 불편함을 느끼고 그에 대해 압도적인 '부적격' 판단을 내렸다. 


청년 정치와 여성 정치는 특정한 나이와 성별의 정치인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들이 기존 정치보다 더 투명한 방식으로 경쟁하고, 더 엄격하게 자신을 검증하며, 자신이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더 책임지는 정치를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사퇴 과정에서 끝내 보이지 않은 것이 바로 그 책임이었다. 국민의 70%가 넘는 사람이 왜 자신의 임명에 반대했는지를 성찰하는 말은 없었다. 자신을 선택한 대통령에게는 송구했지만 자신을 부적격이라고 판단한 국민을 향한 사과는 찾기 어려웠다. 사퇴 이유를 설명하면서도 민주당의 결단 요구를 굳이 공개했다.

국민보다 대통령을 보고, 국민보다 자신을 지지하는 진영을 보고, 국민보다 연합정치의 이해관계를 먼저 계산하는 정치. 이것은 청년 정치도 아니고 여성은 더욱 아니다. 이미 너무 오래 보아온 낡은 정치다.


용혜인 사퇴가 남겨야 할 교훈은 ‘비례대표 의원이 장관을 겸직할 수 있는가’라는 기술적인 문제가 전혀 아니다. 거대 정당들이 위성정당이라는 편법적 제도를 통해 소수정당을 필요할 때 끌어들이고 의석을 나누는 관행을 부수어야 한다. 소수정당 역시 거대 정당의 도움으로 확보한 의석을 독립정치의 성취인 것처럼 포장해온 행태를 성찰해야 한다. 대통령은 장관직이 정치적 연대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국정을 책임질 사람을 찾는 자리라는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

그리고 청년과 여성의 이름으로 정치하는 사람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당신이 청년이고 여성이어서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가 아니라, 청년과 여성을 대표한다고 말할 만큼 기존 정치와 무엇이 다른가. 새로운 정치라는 말은 자기소개가 아니다. 행동으로 증명해야 하는 자격이다.


용혜인의 14일은 짧았다.

그러나 그 14일 동안 위성정당과 비례대표제, 연합정치와 장관 인사, 소수정당의 생존 방식, 그리고 국민보다 진영을 먼저 바라보는 정치까지 한국 정치의 오래된 모순이 압축적으로 드러났다. 그래서 용혜인의 사퇴로 이 논란이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제부터 물어야 한다. 용혜인이라는 정치인이 왜 장관이 되지 못했는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

우리 정치는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친 사람을, 어떤 이유로 장관까지 만들려고 했는가.


용혜인 사퇴가 남긴 것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