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 국제정치 · 2시간 전

룰라 4선 당선, 반전 뒤에 숨은 민주주의 파괴

브라질 최초 4선 대통령이 된 룰라

논란의 투표시간 연장 결정을 내린 대법관은 과거 룰라 변호인

'법적으로 문제없다' 고 결정이 정당해지진 않는다

이번 브라질 대선 결과는 대법원이 정한 것일까? (생성이미지)
이번 브라질 대선 결과는 대법원이 정한 것일까? (생성이미지)


자기 변호사를 대법관으로 임명한 대통령이 또 당선됐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 이야기다. 25일 치러진 브라질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은 유효투표의 51.79%를 얻어 48.21%를 기록한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후보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브라질 역사상 최초로 4선 고지에 이른 대통령이며 1차 투표의 패배를 뒤집고 승리한 첫 대통령이 되었다. 

선거는 끝났어도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보우소나루 측은 투표 종료 직전 내려진 대법관의 투표시간 연장 결정을 문제 삼아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논란의 중심에 있는 대법관의 이력이 눈길을 끈다. 그는 다름 아닌 룰라 대통령의 전직 개인 변호사다.

룰라를 감옥에서 꺼낸 변호사, 룰라가 대법관으로 임명하다

크리스티아누 자닌 브라질 연방대법관은 룰라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을 가진 인물이다. 자닌은 브라질을 뒤흔들었던 대규모 부패 수사인 '라바 자투(Lava Jato·세차 작전)' 과정에서 룰라의 변호를 맡았다. 룰라가 부패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됐을 때도 그의 변호인이었으며, 이후 유죄판결이 무효화되는 과정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크리스티아누 자닌 대법관(사진: 크리스티아누 자닌 X)
크리스티아누 자닌 대법관(사진: 크리스티아누 자닌 X)

룰라는 2018년 수감돼 580일 동안 복역한 뒤 2019년 석방됐다. 한 때 룰라는 정치적으로는 완전히 끝난 인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기존 판결이 무죄로 뒤집혔고 이후 노동자층의 지지를 회복하며 정치적으로 재기해 2022년에 다시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 과정에서 크리스티아누 자닌 변호사가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단순히 룰라의 소송을 맡았던 수많은 변호사 중 한 사람으로 보기 어렵다. 정치 생명에 치명적인 위기를 맞았던 룰라가 재기하는 과정에서 법률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다. 정치적 동지에 가까운 관계였다고 평가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2023년 6월, 대통령에 복귀한 룰라는 바로 그 자닌을 브라질 연방대법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브라질 상원은 찬성 58표, 반대 18표로 임명동의안을 통과시켰고, 자닌은 같은 해 8월 연방대법관에 취임했다. 이 과정은 물론 브라질 헌법에 따른 적법한 절차였다. 대통령에게는 대법관 지명권이 있고, 상원의 인준도 어쨌든 거쳤다. 그러나 대통령의 결정이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것과 정치적으로 바람직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대통령의 재선이 걸린 선거, 그의 전직 변호사가 투표시간을 연장했다

논란은 이번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 발생했다. 10월 25일, 당초 브라질 현지시간 오후 5시에 종료될 예정이었던 투표가 연방대법원의 결정으로 2시간 연장됐다. 결정의 당사자는 자닌 대법관이었다. 룰라 캠프는 일부 도시에서 대중교통 운행이 원활하지 않아 유권자들이 투표소에 접근하기 어렵다며 연방대법원에 투표시간 연장을 요청했다. 자닌은 사안의 긴급성을 인정해 전국의 투표 종료 시각을 오후 7시까지 연장하도록 명령했다. 보우소나루 측 역시 폭우 등으로 투표가 어려워진 일부 지역에 대해 별도의 연장을 요청한 바 있다. 따라서 시간 연장을 요구한 것이 룰라 진영만은 아니었다.

문제는 결정의 시점과 집행 과정이었다. 투표 종료를 불과 몇 분 앞두고 내려진 이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이미 문을 닫은 투표소와 아직 투표가 진행 중인 투표소가 뒤섞였다. 선거당국은 진행 중이던 개표 집계를 일시 중단해야 했다. 결국 자닌은 이미 투표가 종료된 곳을 제외하고 아직 개방 중인 투표소에만 연장 결정을 적용하도록 수정했다. 이 결정이 야당의 반발을 일으켰다. 보우소나루 측은 선거 도중 규칙이 변경됐다며 결과에 불복하고 선거 무효를 요구하고 있다.

투표시간 연장이 룰라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로 연장 결정이 선거 결과를 바꿨다는 증거도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와 별개로 따져야 할 문제가 있다.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개인 변호사를 대법관으로 임명했고, 

그 대법관이 대통령 자신의 재선이 걸린 선거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이다.


룰라와 함께 한 자닌 대법관(사진: 비셰그라드 24)
룰라와 함께 한 자닌 대법관(사진: 비셰그라드 24) 

 대통령이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비슷한 법률가를 대법관으로 임명하는 일 자체는 드물지 않다. 대법관 임명에는 어느 나라에서나 정권의 정치적 판단이 개입된다. 그러나 자신이 형사사건으로 수감됐을 때 변호를 맡았고, 자신의 정치적 재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변호사를 대법관으로 지명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지금은 몰락한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 또는 과거 동구권 독재국가 정도에서나 가능했던 일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런 결정은 '독재'라는 비판과 저항을 받게 된다.

그러기에 룰라는 자신의 선택이 훗날 어떤 이해충돌 논란을 불러올 수 있을지 충분히 예상하고 자제했어야 한다. 비록 그것이 법적으로 가능하며 대통령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종종 정치인들은 자신의 행동이 비판받는 상황에서 흔히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그것은 책임 있는 해명이 될 수 없다. 법적으로 문제 없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공인이 법률적 절차를 준수했다는 것은 권력 행사의 최소한의 조건이지, 그 행사가 정당했다는 증명이 될 수는 없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 또한 그렇다. 사법부가, 국가 시스템이 그저 존재한다고 해서 신뢰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이 그 공정성을 신뢰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가 관건이다.이번 자닌 대법관의 결정이 실제로 공정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다른 문제가 있었고 대법관이 합리적으로, 공정하게 결정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결정이라도 대통령과 특별한 개인적 관계가 없는 판사가 내렸다면 어땠을까? 이토록 큰 불신과 혼란을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지자들 앞에서 대선 불복 입장을 밝히는 플라비오 보우소나루 후보(사진: 로이터 유튜브)
지지자들 앞에서 대선 불복 입장을 밝히는 플라비오 보우소나루 후보(사진: 로이터 유튜브)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인에게 더 엄격한 기준이 필요한 이유

룰라는 그동안 보우소나루 진영의 권위주의와 민주주의 훼손을 강하게 비판해 온 정치인이다. 흙수저 출신 노동자의 대표를 자처하며 민주적 제도와 법치주의의 수호자를 자임해 왔다. 보우소나로 일가의 공격적 정계진출, 족벌주의적 행태를 강하게 비판해 왔다. 그렇기에 자신의 권력을 행사할 때도 그에 걸맞은 절제가 필요하다.

상대편의 반민주적 행태를 비판하면서 정작 자신은 법적 권한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분은 설득력을 잃는다. 민주주의 지도자의 책임은 단지 법을 위반하지 않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행사하는 방식이 민주적 제도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지 않도록 스스로 절제할 책임도 있다. 특히 사법부는 정치권력이 가장 신중하게 다뤄야 할 제도다. 법원이 특정 정치인의 의중에 따라 움직인다는 의심이 커지면, 개별 판결에 대한 불신은 곧 정치체제와 국가 시스템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기 때문이다. 

이번 브라질 대선에서 투표시간 연장이 승패를 바꿨다는 근거는 아직 없다. 자닌 대법관이 룰라에게 유리한 결과를 의도했는지도 지금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의혹은 룰라 대통령이 상당부분 자초한 것이다. 의심을 받고, 논란을 키울 상황을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번 브라질 대선이 남긴 것은 룰라의 역사적인 4선이 아니라 자신의 변호사를 최고법원의 판사로 앉힌 대통령에게, 그리고 그 결정을 받아들인 허약한 정치 시스템(어쩌면 브라질 뿐이 아닐)에 던지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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