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폐지 · 법원 · 1시간 전

미국은 30년, 한국은 5년? — 성범죄를 대하는 사법부의 온도 차이

미국의 '버닝썬', 알렉산더 형제의 1심 30년 선고를 보며

한국과 미국의 제도 차이는 분명, 그러나 사법부의 판결은 한 사회의 기준이 된다

한국은 성범죄, 인신매매, 불법촬영, 약물강간을 충분히 처벌하고 있나

알렉산더 3형제. 가운데가 큰 형 탈, 왼쪽이 쌍둥이 중 형인 오렌, 오른쪽이 앨런이다. (사진: CBS)
알렉산더 3형제. 가운데가 큰 형 탈, 왼쪽이 쌍둥이 중 형인 오렌, 오른쪽이 앨런이다. (사진: CBS) 

미국에서 세 형제가 나란히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알렉산더 형제는 뉴욕과 마이애미의 초호화 부동산 시장에서 이름을 날리던 삼형제다. 탈 알렉산더, 오렌, 앨런 삼형제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사업적으로도 성공해 부와 명성, 사회적 인맥을 지닌 유명인사였다. 부유하고 건실해 보였던 이들이지만 마이애미 사교계엔 그들의 추찹한 사생활과 범죄행위에 대한 소문이 자자했다. 형제들은 고교시절이었던 10대 후반부터 집안의 재력을 이용해 여성들을 파티와 호화 여행에 초대하고, 몰래 약물을 투여한 뒤 집단 성폭행했다.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 또한 저질렀다. 형제에게 당한 피해자 중엔 미성년자도 있었다. 

두 여성의 민사소송 제기로 알렉산더 형제들은 2024년에 체포됐고 지난 10월 27일,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은 삼형제에게 각각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검찰의 요구는 무기징역, 법원은 30년형을 선택했다. 형제들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오랜 기간동안 반복적으로 저지른 성범죄의 중대성을 인정한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한국의 많은 이들은 버닝썬 사건을 떠올린다. 

2019년 한국 사회를 뒤흔든 버닝썬 사건은 부와 명성을 지닌 유명인, 아이돌 스타들이 성매매 알선, 집단 성폭행, 불법촬영, 횡령을 저지른 사건이었고 그들의 뒤를 봐주는 고위경찰이 있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 충격적인 스캔들이었다. 여성들은 술과 약에 취해 저항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했고, 그들의 피해 현장을 찍은 불법촬영물은 단체대화방에서 공유됐다.

승리와 지인들의 단톡방 내용. 여성들에 대한 불법촬영물이 단톡방에서 공유됐다. (사진: 일사에프)
승리와 지인들의 단톡방 내용. 여성들에 대한 불법촬영물이 단톡방에서 공유됐다. (사진: 일사에프) 

그런데 사건의 대표적 인물인 가수 승리에게 확정된 형량은 징역 1년 6개월이었다. 집단 성폭행과 불법촬영물 유포로 유죄가 확정된 정준영이 징역 5년, 최종훈은 징역 2년 6개월을 받았다.

알렉산더 삼형제 사건과 버닝썬 사건의 범죄 내용은 다르다. 승리는 성매매 알선과 횡령, 도박 등으로 처벌받았으며 강간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것은 아니다. 알렉산더 형제는 장기간 반복된 강간과 강제 성매매 목적 인신매매,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 등으로 유죄 평결을 받았다. 피해자 규모와 범행 기간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따라서 두 사건의 결과를 비교해 한국 사법부가 미국보다 훨씬 관대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이런 의문은 가능하다. 술에 취해 저항하기 어려운 여성을 집단 성폭행하고, 여성에게 몰래 약물을 먹여 정신을 잃게 하고, 불법촬영물을 유포한 범죄에 대해 대한민국 법원이 내린, 징역 2년 6개월에서 5년이라는 처벌은 과연 충분했는가.

한국은 충분히 처벌하고 있는가? 

한국과 미국의, 비슷하지만 다른 사건의 극단적인 결과 차이는 양국의 사법제도의 차이에서 온다. 미국 연방법은 강제력이나 사기, 강압을 이용한 성매매 목적 인신매매에 원칙적으로 ‘최소 15년’의 징역형을 규정하고 있다. 판사가 범죄의 중대성을 고려해 형량을 결정하더라도 법정 최저형 15년이라는 강한 제약이 존재한다. 여러 범죄를 저질렀을 때 형을 계산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미국에서는 각각의 범죄 별로 형을 연속 집행하도록 선고할 수 있다. 종종 100년 형 이상의 선고가 가능한 구조다. 한국은 ‘경합범’ 규정에 따라 가장 무거운 범죄의 법정형을 중심으로 형을 가중하는 구조다. 이런 차이는 여러 사람을 반복적으로 해친 범죄자를 처벌할 때 두드러지게 된다. 피해자의 숫자가 늘고 범행이 반복될수록 그 책임을 총형량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도의 차이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한국에도 성범죄를 엄하게 처벌할 법적 수단은 존재하지만 실제 양형에서 어떤 사정을 얼마나 중요하게 평가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한국의 성범죄 재판에서는 진지한 반성, 피해자와의 합의, 피해 회복, 초범 여부 등이 감경 요소로 고려된다. 물론 범죄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마땅히 평가할 필요가 있다. 형벌이 오직 보복만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해자가 뒤늣게 반성하고 합의를 원한다고 해서 피해자의 고통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성범죄의 특성상 가해자 측의 거듭된 합의 요구와 접근이 피해자 입장에선 더 큰 부담과 공포로 다가올 수도 있다. 경제력이 있는 가해자가 그렇지 않은 가해자보다 유리한 양형 사유를 확보하기 쉽다면, 형사사법의 공정성은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도 문제다. 

실제로 버닝썬 관련 판결에서도 항소심 감형은 중요한 논란거리였다. 승리는 1심 징역 3년에서 1년 6개월로 감형됐고, 최종훈 역시 1심 징역 5년에서 2년 6개월로 감형됐다. 두 사람의 사건에서 범죄의 유죄 판단은 유지됐지만, 반성과 합의 노력 등 감경 사유가 최종 형량에 영향을 미쳤다. 피해의 중대성, 범행의 반복성에 비춰 이런 결론이 과연 적정했을까? 

버닝썬 사건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가수 승리(사진:SBS 유튜브)
버닝썬 사건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가수 승리(사진:SBS 유튜브)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그동안 성폭력은 오랫동안 개인 사이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이나 '사생활'의 문제로 취급돼 왔다. 피해자가 왜 저항하지 않았는지, 왜 곧바로 신고하지 않았는지, 왜 가해자를 다시 만났는지 구구절절한 설명을 요구받는 일도 있었다. 지금도 경찰 신고와 진술 과정에서 사생활침해나 2차 가해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이 허다하다. 

사법부는 판결은 한 사회의 기준이 된다

미국의 사법제도가 이상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성범죄가 제대로 신고되지 않거나, 권력 있는 가해자가 장기간 처벌을 피하는 일은 여전히 발생한다. 퍼프 대디 사건처럼 솜방망이 판결로 넘어가거나 엡스타인 사건처럼 가해자의 자살(그것도 그 어렵다는 '옥중에서의 자살') 로 사건에 대한 음모론만 더 커지는 결과를 내기도 한다. 지나치게 무거운 형벌과 법정 최저형이 판사의 판결 재량을 제한한다는 비판도 일각에서는 제기된다. 미국이 모든 성범죄를 한국보다 엄벌한다고 속단할 근거도 충분치 않다. 

그럼에도 알렉산더 형제에게 선고된 징역 30년은 ‘버닝썬’ 을 기억하는 한국의 우리들을  불편하게 한다. 

1심에서 각각 30년 형을 선고받은 알렉산더 형제들. (사진: Nevada News2)
1심에서 각각 30년 형을 선고받은 알렉산더 형제들. (사진: Nevada News2)

반복적이고 조직적인 성폭력을 얼마나 중대한 범죄로 평가할 것인가. 피해자의 수와 피해의 지속성, 약물 사용과 집단적인 범죄 가담, 돈과 사회적 지위의 악용을 형량에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할 것인가. 우리 사회는 이런 범죄를 충분히 엄중하게 경계하고 처벌하고 있는가. 특히 검찰이 사라지고, 경찰이 수사의 전권을 가져가고, 중수청이 자리잡지 못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성범죄 피해자는 온전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알렉산더 형제 사건을 보며 많은 이들은 '미국에서는 왜 30년이나 선고했을까'가 를 궁금해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질문은 ‘지금 한국은 충분한가’ 다. 

‘우리가 사는 한국에서는 버닝썬을 비롯한 수많은 성범죄, 인신매매, 스토킹, 약물 강간, 불법촬영에 대해, 무엇을 근거로 그 정도 형량이면 충분하다고 판단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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