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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현칼럼]차기 대통령이 만들 수 있는 외교적인 큰 기회
  • 박주현
  • 등록 2025-04-09 17:16:00
  • 수정 2025-04-13 17:2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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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탄핵이라는 어둡고 혼란스러운 시기를 거쳐 조기대선이 현실로 다가왔다. 다들 익히 아시겠지만 그 사이 트럼프의 당선과 러우전쟁의 상황 급변, 미국발 관세폭탄 등 국제 정세는 정말 한치앞도 못 내다 볼만큼 그야말로 "글로벌 카오스"라 할만하다.


우리가 탄핵에 정신이 팔려 간과하고 있던 국제정서를 제대로 읽어보면 그간 많은 전문가들이 내린 한국경제에 대한 암울한 진단과 달리 한국이 처한 많은 문제를 동시에 타개할 수 있는 기회들이 도처에 감지된다. 


대체적으로 전망은 부정적으로 하는게 유리한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차기 대통령의 조건에 대한 제안이라는 측면에서 감히 천운이 한국에 따르는 게 아닌가 하는 조금은 과감하고 일정 부분 도발적이기까지 한 희망적인 전망과 제안을 동시에 해보려 한다.


위기는 기회다. 최악의 외교위기, 뛰어난 리더는 기회로 만들 수 있다. (그래픽=가피우스_

러시아가 기다리는 한국의 시간


세계 정치의 무대는 종종 연극 무대를 닮았다. 정해진 대본은 없지만 배우들은 각자 자신의 역할을 철저히 수행한다. 때로는 주연이 되고, 때로는 조연으로 물러나며, 가끔은 완전히 무대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비극적 연극이 장기 공연 중이지만, 곧 막을 내릴 기미가 보인다. 그리고 그 이후의 무대에서 한국이라는 배우가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이것이 우리의 관심사다.


힘의 재편: 러시아의 현실과 미국의 계산


러시아는 지금 경제적으로 상당히 힘들다. 어떤 나라든 전쟁을 오래 끌면 국가 경제는 늪에 빠진 자동차처럼 더 깊이 가라앉기 마련이다. 특히 서방의, 정확히는 미국 주도의 경제 제재는 러시아 경제를 서서히 질식시키고 있다. 트럼프가 꺼낸 세컨더리 보이콧이라는 이름의 25% 관세 카드는 러시아와 거래하는 제3국 기업까지 제재하는 무시무시한 효과를 발휘한다. 이는 마치 전염병 환자뿐 아니라 그와 접촉한 사람까지 격리시키는 방역 정책과 비슷하다.


푸틴은 강한 사람을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는 스스로를 강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것을 좋아한다. 모든 독재자가 그렇듯이. 그런 그에게 5월 9일 전승절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나치 독일을 물리친 러시아의 영광을 기념하는 이 날, 푸틴은 새로운 승리를 선포하고 싶어 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얼마나 자신의 강함을 과시하고 싶어하는지가, 오히려 그의 약점이 되어 전쟁 종식을 앞당길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계산은 더 복잡하다. 냉전 시대의 주적이었던 소련은 이제 2순위 위협으로 밀려났다. 1위는 단연 중국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중국을 어떻게든 고립시키고 약화시키는 것을 넘어 최종적으로는 분열시키는 것이 최종목표라고 여러 내부문서에서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전략 중 하나가 바로 러시아를 대중국 포위망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는 마치 두 명의 강력한 적이 있을 때, 약한 쪽을 회유해 강한 쪽을 고립시키는 고전적인 전략과 같다.


한국의 기회와 독일의 교훈


이 혼란스러운 세계 정세 속에서 한국은 특별한 위치에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러시아의 입장에서도 한국은 매력적인 파트너다. 러시아는 경제 재건을 위해 기술력과 자본을 가진 협력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유럽에 손을 내밀기엔 관계가 너무 틀어졌고, 중국과의 협력은 러시아도 미국도 탐탁치않다. 미국은 러시아가 중국 편으로 완전히 기울지 않도록 견제할 수 있는 중간자가 필요하다. 두 나라 모두에게 한국은 이상적인 후보다.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메르켈 총리 시절, 독일은 중국에 수출하고 러시아로부터 싼 에너지를 수입하는 방식으로 장기간 경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이런 균형은 결국 무너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공급이 불안정해지고,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독일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대학 시절 좋아하던 한 교수님의 말이 생각난다. "한 바구니에 모든 달걀을 담지 마라." 독일은 그 바구니를 두 개로 나눴을 뿐, 결국 둘 다 떨어뜨리고 말았다.


한국은 IMF 위기를 겪으며 중진국 함정에 빠질 뻔했지만, 중국과의 이념을 분리한 경제협력을 통해 선진국의 문턱을 넘었다. 이제 우리는 그 경험을 러시아를 대상으로 되살릴 기회를 맞았다.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의 경제 보복(한한령)은 우리에게 쓰라린 교훈을 남겼다. 경제와 안보는 완전히 분리될 수 없으며, 장기적으로 가장 믿을수 없고 위협적인 존재가 누구인지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 깨달음 덕분에 한국은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새로운 질서에 준비할 수 있었다.


대북 관계의 새로운 변수와 러시아의 역할


김정은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은 아이러니하게도 한반도 정세에 긍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그의 의도는 자신의 정권 생존을 위한 것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러시아는 중국보다 더 믿을 만한 남북 간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러시아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고, 푸틴은 스스로를 차르, 즉 황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시진핑과 달리,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통해 전세계를 향해 '전쟁을 일으킨 악마'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불식시키려 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런 시도가 성공할지는 별개의 문제다.


차기 정부의 외교 전략: 친러의 시간


결국 차기 대통령은 친러 외교라인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경제적 위기와 북한과의 군사적 위기를 동시에 넘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이는 전략적 선택이자 역사적 기회다. 누구라 딱히 지목하고 싶지는 않치만 친중주의적 성향의 정치인이 권력을 잡는다면, 우리는 이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외교는 결국 선택의 문제다. 어떤 나라와 더 가까워질 것인가, 어떤 나라와 거리를 둘 것인가. 이는 마치 인간관계와도 비슷하다.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현실에서는 누군가를 더 가깝게 두면 자연히 다른 누군가와는 거리가 생긴다. 국제 관계도 마찬가지다.


역설적이게도, 북한의 러시아 편들기는 한국에게 새로운 외교적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이제 우리는 그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도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것, 이것이 앞으로 100년을 내다보는 한국 외교의 새로운 방향이 될 수 있다.


균형의 예술


외교는 균형의 예술이다. 한쪽으로 너무 기울면 넘어지기 쉽다. 미국과의 동맹, 중국과의 경제 협력, 그리고 이제 러시아와의 새로운 관계. 이 세 축을 어떻게 균형 있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가 차기 정부의 과제다.


톨스토이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했다. 국제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성공적인 외교 전략은 비슷한 원칙을 따르지만, 실패한 외교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실패한다. 한국의 차기 정부가 러시아가 기다리고 있는 이 역사적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균형의 예술을 완벽하게 수행해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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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5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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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4-11 09:54:34

    맞는 말이다!
    이낙연님이 가장적합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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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4-10 08:38:12

    어쩌면 이렇게 부드럽게 써내려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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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p772025-04-09 18:28:25

    이낙연총리면 할 수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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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ver2025-04-09 17:48:55

    호재는 있으나, 대한민국호가 주워 먹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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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4-09 17:46:16

    기사 정독하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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